아비멜렉이 이삭과 약속을 맺다
(창 21:22-34)
15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아브라함의 노예들이 우물을 여럿 파 놓았다. 그런데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그것을 다 막고 흙으로 메웠다. 16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했다. “우리에게서 떠나시오. 그대가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해졌소.” 17이삭은 거기서 떠나 그랄 마른시내에 진을 치고 거기에 자리 잡았다. 18이삭이 다시 우물을 팠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 팠던 것을 아브라함이 죽은 뒤에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메운 우물이었다. 이삭은 그 여러 우물에 아버지가 붙여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붙여 불렀다. 19이삭의 노예들은 마른시내에서 우물을 파다가, 거기서 생수가 솟는 샘을 만났다. 20그런데 그랄의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며 말했다. “그 물은 우리 거야!” 그래서 이삭이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이삭과 말다툼했기 때문이다. 21이삭의 목자들이 다른 우물을 팠는데, 이를 두고서도 다툼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 우물의 이름은 ⁕시트나라고 불렀다. 22이삭은 거기서 옮겨 가서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이를 두고서는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삭이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제 우리에게 자리를 넓게 마련해 주셨으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할 거야.”
23이삭은 거기서 브엘세바로 올라갔다. 24여호와께서 그날 밤에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에게 복을 내리고 너의 후손을 많아지게 하마. 나의 종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마.” 25이삭은 거기에 제단을 만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거기에 이삭이 천막을 쳤고, 거기에 이삭의 노예들이 우물을 팠다.
26아비멜렉이 그랄에서 이삭을 찾아왔다. 그의 친구 아훗삿과 그의 군대 사령관 비골과 함께였다. 27이삭이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임금님은 저를 미워하여 내보내셨지요.” 28그들이 대답했다. “여호와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보았소. 그래서 우리 사이에 곧 우리와 그대 사이에 한 가지 굳게 합의를 해 두고 싶다고 생각했소. 그대와 약속을 맺고 싶소. 29그대가 우리한테 해코지하지 않기 바라오. 우리가 그대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를 좋게만 대하여 평화로이 내보낸 것처럼 말이오. 그대는 이제 여호와께 복받은 사람이오.” 30이삭이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고, 그들이 먹고 마셨다. 31다음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서로 맹세했다. 이삭이 그들을 내보내자, 그들은 평화로이 그에게서 떠나갔다. 32바로 그날 이삭의 노예들이 와서 그들이 판 우물 때문에 이삭에게 보고했다.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물을 찾았습니다.”라고 했다. 33이삭이 이 우물을 ⁕세바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 도시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이다.
개요 요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지명 ‘브엘세바(Beer-sheba)’가 과연 이삭이 판 우물(창 26장)에서 기원했는지, 혹은 후대에 그 이름의 유래담(etiology)을 덧붙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여러 학자들의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역사비평적·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구전(口傳) 전승을 통해 전해 내려온 이야기가 **사후적(事後的)으로 지명에 대한 설명을 붙인 ‘에티올로지적 전승(etiological tradition)’**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이는 “400년 이상의 기간이 흐른 뒤 출애굽 세대의 이스라엘 민족이 ‘옛날 이삭(혹은 아브라함)이 우물을 판 곳’으로 브엘세바를 인식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가나안 땅에 진입한 뒤에도 실제로 그 지명이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화 없이 전승되었는지가 불확실하다는 점, 그리고 창세기에 나타난 지명 유래담이 곳곳에서 문학적(신학적) 의도로 재배열 또는 편집된 흔적을 보인다는 점 등이 주요 근거로 제시됩니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학계의 전형적인 설명 방식과 근거 자료를 (1) 성서학적(역사비평적) 관점과 (2) 고고학·문헌자료적 관점으로 나누어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성서학적(역사비평적) 관점
1.1. 에티올로지적 이야기(etiological narrative)의 특징
성서 내 많은 지명·제의·관습에 대한 기원 설명은 **‘에티올로지(etiology)’**라고 불립니다. 즉, 후대 공동체가 익히 알고 있는 특정 지명·행사·관습의 ‘기원’을 그들의 시조(또는 조상) 시대에 소급(遡及)시켜 “왜 이곳이 이러한 이름이 되었는지” 또는 “왜 이런 풍습이 생겼는지”를 이야기 형태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 예) 창세기 28장 베텔(Bethel) 이야기: 야곱이 잠을 잔 돌기둥 때문에 그곳을 ‘베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
- 예) 출애굽기 16장 만나(manna) 이야기: 만나라는 단어의 유래를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이 무엇이냐(מן הוא, man hu)?”라고 물었던 데서 비롯했다고 해석.
이러한 방식의 이야기는 비단 고대 이스라엘만의 특징이 아니라, 고대 근동·그리스·로마 등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서사 기법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에티올로지적 서사를 역사적 사실을 직접 보도한다기보다, 현 시대(혹은 기록 시점)의 지명·전통·관습을 ‘옛적’과 연결해 주는 문학·신학적 장치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2. 문서가설(Documentary Hypothesis)과 두 번 등장하는 브엘세바 명명
창세기에는 브엘세바 명명 장면이 두 번 등장합니다.
- 아브라함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맹세를 한 뒤,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라 하였다(창 21:31).
- 이삭이 같은 이름을 붙인 이야기(창 26:33)도 거의 유사한 구조로 반복됩니다.
이 두 본문은 전승의 중복, 문서 출처의 차이(J문서/ E문서/ P문서 등의 복합) 등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즉, 창세기 편집 과정에서 이미 알려져 있던 ‘브엘세바’라는 지명에 대해, 서로 다른 전승들이 각각 그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때 각각의 이야기들은 편집자가 “조상 이야기를 중복해서라도 모두 살려 두었다”는 편집 방침 아래 통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1.3. 오랜 세월 간 명칭 전승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
400년 이상이라는 시간 동안 동일 지명이 전승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이스라엘 민족이 실제로 출애굽 사건을 경험한 시점을 기원전 15세기(혹은 13세기) 전후로 볼 경우,
- 아브라함·이삭 이야기는 **기원전 18~16세기(또는 그 이상)**로 상정하는 것이 보통인데,
- 최소 3~40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간격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야곱과 그 아들들이 애굽으로 이주한 이후 ‘광야 시대’를 거쳐 가나안에 재정착하는 동안 주변 지명이 고스란히 유지되었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 문제 제기됩니다. 지명은 언어·민족·정치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브엘세바라는 지명이 정말로 patriarch 시대에까지 소급되는 것인지, 혹은 2차적인 내러티브 편집 과정에서 후대가 그 시조 전승을 ‘각색’하며 만들어 낸 에티올로지인지”를 문제 삼게 됩니다.
2. 고고학·문헌자료적 관점
2.1. 브엘세바의 역사적 실재와 고고학 자료
고대 근동 지역의 지명은 종종 이집트 기록, 혹은 주변 도시 국가들의 비문(碑文) 등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 예컨대 “시리아 지역의 라기스(Lachish)”나 “므깃도(Megiddo)” 같은 지명은 여러 시대의 외부 기록에 등장합니다.
- 브엘세바(Beer-sheba)의 경우도 남유다 지역의 관문 도시로 발전했으며, 주전 10세기~8세기 사이의 ‘고고학적 유적’이 현 브엘세바 지역에서 발굴되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명이 기원전 2천년기 중반(아브라함·이삭 시대로 가정되는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구체적 문헌 증거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학계에선 “브엘세바라는 지명이 존재한 것은 일찍 잡아도 청동기 후기~철기 초기에나 확인 가능”하다고 보는데, 이것이 곧 “창세기가 묘사하는 시대에 이미 그 지명이 있었다”고 보장하진 못합니다.
2.2. 주변 문화의 지명·신화·전설과의 병행 연구
고고학적·비교종교학적 자료를 보면, 특정 장소에 대한 ‘우물 신화’, ‘신탁 전승’ 등이 후대에 덧붙여지는 예가 빈번합니다.
- 예) 우물이나 샘물이 신(神)의 은총이나 기적과 결부되는 전통은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이집트 등지에서 널리 볼 수 있음.
- 이런 우물 전승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특정 조상(혹은 영웅)의 이야기로 편입되어 “이 우물은 우리의 조상이 판 것이고, 이 때문에 이곳 이름이 ~가 되었다”는 식으로 서사가 재구성되곤 합니다.
브엘세바에 대한 창세기의 두 이야기(창 21, 창 26) 역시 이러한 범주로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역사비평학적 설명입니다.
3. 학계의 대표적 견해와 참고 자료
- **Gerhard von Rad, 『Genesis』(Old Testament Library 시리즈)
- 게르하르트 폰 라드(Gerhard von Rad)는 창세기의 지명 유래 이야기들이 지니는 신학적·문학적 의도를 강조하며, ‘반복되는 지명 명명’(아브라함/이삭)의 이중 전승을 역사적 사실보다는 후대 편집 단계에서 통합된 상이한 전승으로 봅니다.
- **E. A. Speiser, 『Genesis: Introduction, Translation, and Notes』 (Anchor Bible Commentary)
- 스파이저(E. A. Speiser)는 문서가설의 관점에서 창 21장과 26장의 차이를 분석하고, 브엘세바 명명 장면이 대표적인 이중 전승 사례임을 지적합니다.
- 또한 브엘세바가 당시 지역에서 중요한 종교·정치적 도시였기에 이를 조상 서사와 연결짓는 전승이 자연스레 형성되었을 것이라 설명합니다.
- **Gordon J. Wenham, 『Word Biblical Commentary: Genesis 16–50』
- 웬함(Gordon Wenham)도 두 본문의 문학구조와 어휘상의 차이를 분석하며, 각각의 본문이 ‘비슷한 이야기를 별개로 전승한 것’으로 봅니다.
- 이 과정을 통해 “브엘세바”라는 지명이 이미 ‘잘 알려진’ 지명이었기에 이를 “조상 시대부터 거룩한 장소로 전해 내려왔음”을 주장하려는 신학적 의도가 가미되었음을 지적합니다.
- **John Collins, 『Introduction to the Hebrew Bible』
- 존 콜린스(John J. Collins)는 창세기의 지명 유래담들이 후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을 짚습니다.
- “과연 400년 전의 이름이 그대로 보존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역사비평학적 관점에선 “본래 지역명이 존재했고, 후대 전승자들이 이를 조상 이야기 속에 끼워 넣어 신학적·역사적 연속성을 부여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4. 결론 및 요점 정리
- 400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 간격과, 광야 시기를 거쳐 정착하는 과정에서 동일 지명이 완벽히 전승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창세기 본문에 나오는 “브엘세바라는 이름의 유래” 이야기는,
- **고대 근동 지역에 흔히 존재하던 ‘지명 유래 설화(에티올로지)’**의 전형적 예시로 여겨집니다.
- 구전 전승에 여러 형태로 존재하던 “우물을 판 조상” 이야기가, 편집 과정에서 아브라함·이삭 서사로 각각 흡수되면서 이중 명명 전승이 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 실제로 브엘세바가 그 이전 시대에도 같은 이름이었는지는 확정할 문헌·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합니다.
- 결론적으로, “출애굽 세대가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때 과연 ‘이삭이 판 우물’로 그곳을 특정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의문은, 역사비평 관점에서 이미 후대(왕국 시대나 그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가 ‘자신들의 성소 도시 브엘세바’를 조상 전승과 연결하며 재구성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견해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브엘세바의 지명 유래담이 후대에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은 많은 성서학자가 공유하는 시각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학계 자료로는 위에 언급된 주석서(Anchor Bible Commentary, Word Biblical Commentary, Old Testament Library 시리즈 등)나, 존 콜린스의 『히브리 성서 입문』(Introduction to the Hebrew Bible) 등이 있습니다. 이런 연구들은 단순히 “성서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본문의 문학적·신학적 의도와 편집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주목하여, 창세기에 나오는 다수의 지명 유래 이야기를 에티올로지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에셀나무(에셀, 히브리어 אֵשֶׁל, eshel)’가 가나안의 ‘아세라(Asherah, 히브리어 אֲשֵׁרָה)’ 신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직접적인 증거나 정통적 학설은 없습니다.
다만, 구약성경(예: 창세기 21:33)에서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고, 가나안 지역에서 ‘아세라 신을 나무(또는 목상) 형태로 섬겼다’라는 서술이 나오다 보니 둘 사이를 연결해 해석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을 뿐입니다.
1. 에셀나무(Eshel)와 어원
- 히브리어 ‘에셀(אֵשֶׁל)’은 보통 영어로 tamarisk(다며리스크, 한국어로 보통 ‘에셀나무’ 또는 ‘떨기나무’ 계열)로 번역됩니다.
-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로, 건조 지역에서 비교적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아세라(Asherah)의 의미와 숭배 방식
- **‘아세라(Asherah, אֲשֵׁרָה)’**는 고대 가나안 지역 및 주변에서 숭배된 여성 신(풍요의 여신)이며, 고고학적·문헌학적으로 엘(El) 혹은 바알(Baal) 등의 배우자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 고대 이스라엘에서 우상 숭배를 금하는 신명기 신학과 대립되는 대상이었으며, 아세라 숭배 물건을 ‘아세라 목상’(‘아세라 상’, ‘아세라 목주’ 등)으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우상숭배 금지와 관련해 “아세라상을 찍어 없애라”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 여기서 ‘아세라 목상’ 또는 ‘나무 기둥’이 어떤 특정 수종(樹種)을 지칭한다기보다는, 나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신상(神像)을 포괄적으로 의미합니다.
3. 에셀(אֵשֶׁל)과 아세라(אֲשֵׁרָה) 어원 및 쓰임새 비교
- 철자 차이
- 에셀(אֵשֶׁל, aleph-shin-lamed)
- 아세라(אֲשֵׁרָה, aleph-shin-resh-heh)
두 단어는 철자와 형태가 다르며, 발음상 유사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동일한 어원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 맥락 차이
- 에셀나무는 성경에서 주로 “심었다”, “그늘을 제공했다” 같은 일상적·실질적 용도로 나오며,
- 아세라는 우상 숭배의 ‘목상’ 또는 ‘여신’을 가리키는 종교적·신화적 맥락으로 등장합니다.
4. 학계의 일반적 시각
성경학·고고학 분야에서 ‘아브라함이 심은 에셀나무 = 아세라 숭배를 위한 나무’라는 식으로 동일시하거나, 에셀나무가 아세라 숭배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일부에서는 “고대 근동 사회에서 나무 자체가 신성시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행동에도 종교·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 정도는 제기하나, 그것을 곧바로 아세라 숭배로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큽니다.
- 더욱이 창세기 맥락에서 아브라함의 행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에 이어서 나오며, 우상 숭배를 위한 행위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5. 요약
- 언어적·기록상 근거
- 에셀(אֵשֶׁל)과 아세라(אֲשֵׁרָה)는 철자, 의미, 쓰임새 모두에서 명확히 구분됩니다.
- 학계 견해
- “에셀나무가 아세라 신을 상징했다”라는 직접적·정통적 견해는 없습니다.
- 신학·역사적 배경
- 구약성경에서 ‘아세라’는 우상 숭배 대상의 신격 혹은 목상(우상)이며, ‘에셀나무’는 주로 일상 용도로 심은 실제 나무로 제시됩니다.
결론
에셀나무(떨기나무, tamarisk)가 가나안의 아세라 신을 상징한다는 학설은 주류로 인정되지 않으며, 두 단어·개념 간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심은 에셀나무와 가나안의 아세라 숭배(아세라 목상)는 용어, 상징, 신학적 맥락 모두에서 별개의 주제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성경(특히 KJV, King James Version)에서 ‘아세라(Asherah)’가 여러 군데서 “grove(숲, 작은 숲)”로 번역된 사실 때문에, “아세라가 곧 인위적으로 심은 나무나 숲(‘grove’)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종종 생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아세라’는 단순히 ‘인위적으로 심겨진 나무/숲’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고대 근동의 여신(Asherah) 또는 그 여신을 상징하는 ‘나무 기둥(목상)’이나 ‘신상(우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1. 왜 KJV(흠정역) 등에서 “grove”로 번역했나?
- 고어(古語)에서의 ‘grove’ 의미
17세기 영어인 KJV 번역 당시에는 ‘grove(숲, 동산)’가 단순히 나무가 밀집해 있는 숲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종교적·의식적 용도로 조성된 ‘숲’이나 ‘신전 숲(sacred grove)’ 등을 가리키는 용도로도 쓰였습니다. - 아세라 숭배가 ‘나무(목상)’ 형태로 이뤄졌기 때문
고대 이스라엘 주변의 가나안 지역에서 아세라 신을 숭배할 때, 실제 나무(또는 그루터기), 혹은 나무 기둥(pole)을 세워 놓고 섬긴 풍습이 있었습니다. 당시 번역자들은 이것을 ‘숲(또는 목재 구역) 형태의 숭배’로 이해하여 ‘grove’로 옮겼습니다.
즉, KJV가 ‘아세라(Asherah)’ 대신 ‘grove’라고 번역한 것은
- 고대에 나무나 숲 형태의 신앙 행위가 존재했고,
- 17세기 영어 표현으로는 이를 ‘grove’(종교적 숲)라 부르는 것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던
역사·문화적 배경에 기인합니다.
2. ‘아세라(Asherah)’의 본래 의미
- 가나안의 여신 이름
- 히브리어 אֲשֵׁרָה(Asherah)는 본래 고대 가나안 지역의 풍요와 다산의 여신 이름입니다.
- 고고학 자료(라스샴라, 우가릿 문서 등)에서도 *엘(El)*의 배우자 혹은 *바알(Baal)*과 관련된 여신으로 언급됩니다.
- 우상(목상)을 가리키는 말
-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이스라엘에서는, 아세라를 가리키는 단어가 곧 그 여신을 상징하는 **‘목상’(나무 기둥, 주상, wooden pole)**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 예를 들어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라”(출 34:13, 신 7:5 등)처럼, ‘아세라’가 곧 “잘라 파괴해야 할 나무 우상”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 살아있는 나무냐, 조각된 나무기둥이냐?
- 일부 본문은 살아 있는 ‘거룩한 나무’나 ‘성스러운 숲’ 형태로 아세라 숭배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 또 다른 본문(특히 “목상”으로 번역되는 구절들)은 이미 잘라낸 통나무나 기둥, 즉 조각된 우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 결과적으로 ‘아세라’라는 단어 자체는 어느 한 형태만 딱 지칭하기보다, ‘아세라 여신 + 그 숭배를 위한 (주로) 나무 재질의 상징물’을 포괄합니다.
3.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심겨진 나무나 숲’을 의미할 수도 있나?
- ‘Asherah = grove’(인위적 숲)으로 단정 짓기는 어려움
물론 고대에는 특정 장소에 의도적으로 나무를 심어 ‘신성 구역’을 조성하기도 했고, 그곳을 아세라 숭배의 장소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세라(Asherah)’라는 히브리어 단어 자체가 곧바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숲(또는 나무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번역상의 흔적: ‘grove’
KJV 등에서 ‘아세라’를 ‘grove’로 번역한 것은, 영어 단어 선택이 제한적이던 시기에, *“아세라가 나무(목재)로 된 숭배 대상이었고, 때로는 숲처럼 조성된 곳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의식이었다.”*라는 점을 최대한 반영하려 했던 흔적입니다.- 이로 인해 영어권 독자가 “아세라 = 나무숲(grove)”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지만, 현대 성서학은 “아세라 여신 혹은 그 여신의 상징물(목주)”라는 점에 보다 무게를 둡니다.
4. 결론 정리
- ‘아세라(Asherah)’는 본디 고대 가나안의 여신 이름
- 그 숭배가 “나무 기둥(목상)”이나 “신성시된 숲” 형태로 이루어짐.
- KJV가 ‘grove’로 번역한 이유
- 고대 숭배 장소가 실제 숲이나 나무 주변이었고, 17세기 영어 표현으로는 그 개념을 ‘grove(작은 숲, 신성 구역)’로 옮긴 것.
- ‘인위적으로 심겨진 나무/숲’ 자체를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의 한계
- 아세라 숭배가 “조성된 숲” 형태일 때도 있었겠지만, 성경의 아세라(목상)에 관한 언급은 대개 “조각된 나무 기둥 우상”을 지칭하는 의미에 더 가깝다.
- 오늘날 일반적인 이해
- 아세라는 ‘나무 그 자체’라기보다 “가나안의 풍요 신 + 그 신을 상징하는 목상 우상(또는 성소)”을 일컬으며, 후대 번역어인 ‘grove’는 시대적·문화적 상황에서 나온 번역 용어라고 본다.
핵심 요약
- ‘아세라’를 영어 성경에서 ‘grove’(작은 숲, 숲속 성소)로 번역한 것은, 고대에 나무나 숲을 이용해 여신(아세라)을 섬겼다는 배경을 반영한 번역입니다.
- 그러나 ‘아세라’라는 단어 자체가 “인위적으로 심어 놓은 나무나 숲”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고대 여신 아세라 + 그 여신을 기리는 나무(목상) 숭배를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입니다.
- 따라서 “아세라는 인위적으로 심겨진 나무를 뜻한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나무(혹은 숲)로 된 숭배 기둥’ 혹은 ‘아세라 여신의 목상 숭배’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현대 성서학의 주류 관점입니다.
성경이든 고대 문헌이든 “에셀나무(아브라함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그 tamarisk 계열 나무)를 아세라 신으로 숭배하고, 그 주변에 신당을 짓고 제사를 드렸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계에서도 그러한 주장을 정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1. ‘에셀나무 = 아세라 숭배 대상’ 주장 근거가 희박한 이유
- 성경에 에셀나무 관련 우상 숭배 기록이 없음
- 구약성경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심은 ‘에셀나무’(창 21:33)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맥락에서 언급될 뿐, 그 나무가 아세라 신앙과 연결된다는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 아세라 숭배는 ‘목상(木像)’이나 ‘우상 기둥’ 중심
- 성경에서 아세라(Asherah)는 고대 가나안 지역의 여신이자, 그녀를 상징하는 나무 기둥(우상)을 가리킵니다.
- 주로 “아세라상을찍어버리라”(출34:13등)“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라” (출 34:13 등)처럼 **조각된 나무 기둥(목주)**을 파괴하는 맥락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 특정 나무(예: 에셀나무)를 아세라의 신목(神木)으로 직접 지칭해 언급하는 사례는 없습니다.
- 에셀(אֵשֶׁל)과 아세라(אֲשֵׁרָה)는 어원·철자 자체가 다름
- “소리가 비슷하므로 동일한 나무를 의미한다”는 주장은 어문학적으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 ‘사시사철 푸른 나무를 숭배했다’는 관념은 포괄적 추정에 가까움
- 고대 근동에서 ‘푸른 나무(evergreen)’ 자체를 신성시하는 문화나, ‘신성한 숲(grove)’을 조성해 제사를 드린 경우는 있었으나, 그것이 곧 에셀(tamarisk)이라는 특정 종(種)이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습니다.
2. ‘에셀나무 주변에 신당을 지었다’는 설(說)의 배경
- 잘못된 연결 짓기
-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었다(창 21:33) → 그 후대에 가나안 지역에서 나무 숭배(아세라)가 있었음 → 그렇다면 에셀나무가 아세라 신목이었을 수 있다”라는 식의 단순 연결로 인한 추정입니다.
- 실제 문헌 자료로 확인되지 않은, 사적(私的) 추론이나 2차 문헌의 가설인 경우가 많습니다.
- KJV 등 영어 성경에서 ‘Asherah’를 ‘grove(숲)’로 번역
- 과거 영어 성경(KJV)이 아세라(Asherah)를 ‘grove(작은 숲)’로 옮긴 탓에, “아세라 = 숲” 혹은 “어떤 나무를 심어 놓은 숲”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현대 성서학에서 ‘아세라 = 숲’이라는 등식은 너무 단순화된 번역으로 보고, 실제로는 “가나안 여신 + 그 우상(목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3. 고대 근동에서 나무 숭배 자체는 존재했지만…
- ‘나무 숭배’의 일반적 양상
- 고대 근동 전역(가나안, 아람, 페니키아 등)에서 “거룩한 나무”나 “신성시된 숲”이 존재하긴 했습니다.
- 그러나 특정 종(에셀/tamarisk 등)을 지목하여 그 주변에 반드시 신당을 짓고 아세라로 숭배했다는 구체적인 고대 문헌이나 성서 구절은 없습니다.
- 성경과 고고학적 자료의 일치
- 성경은 주로 ‘나무로 만든 우상’(아세라 목상) 파괴를 반복적으로 명령합니다.
- 실제 고고학 자료(조각상, 도기 인각 등)에서도 아세라 숭배는 기둥 형태나 인형 형태로 표현된 경우가 많습니다.
- “에셀나무 주변 신당”에 대한 고고학적 흔적은 보고된 바 없습니다.
4. 정리: 신학·역사적 시각
- 에셀나무를 아세라 신으로 섬겼다는 성경 본문은 없다.
- ‘아세라 = 나무(숲)’ 개념 자체가 KJV 번역에서 비롯된 오해가 크다.
- 학계 정설: ‘아세라’는 고대 가나안 여신과 그 우상(목주)을 지칭
- 살아있는 특정 수종(에셀 등)을 직접적으로 지목해 ‘아세라 신’이라 부른다는 기록은 없음.
- ‘에셀나무 주변에 제단/신당’이 있었다는 고대 문헌이나 성서의 직접 증거도 없다.
- 일부 개인 저술이나 구전(口傳)에서 추정·가설이 제기된 경우가 있을 뿐, 확증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결론
“사시사철 푸른 에셀나무를 아세라 신으로 여기고, 그 주변에 신당을 지어 제사를 드렸다”는 식의 기록은 성경이나 고대 문헌에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까지의 성경학·고대 근동학 연구에 따르면, 에셀나무와 아세라 신앙을 직접 연결 지을 만한 명백한 문헌/고고학적 근거는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간단 결론
성경에 “아세라 신당이 주로 푸른 나무 곁에 있었다”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아세라 숭배와 ‘푸른 나무(evergreen tree)’를 연결하는 구절은 딱 부러지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구약 여러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숭배했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그 우상 가운데 ‘아세라(Asherah)’ 숭배가 포함되어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이런 구절들은 고대 근동의 ‘나무숭배’·‘숲(또는 나무 기둥) 숭배’ 관행을 반영한다 보며, 그 뒤편에는 ‘아세라 = 풍요와 생명력의 여신’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음을 많은 학자들이 추정합니다.
1. 성경의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 숭배 언급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풍습을 따르며 우상숭배를 한 것을 책망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렸다.”
- 예:
- 열왕기상 14:23 “그들도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들과 우상을 세웠다.”
- 열왕기하 17:10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아세라 우상을 세웠더라.”
- 이사야 57:5, 예레미야 2:20, 3:6, 에스겔 6:13 등 유사한 표현
- 예:
이 구절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종교의 영향을 받아, 주로 높은 언덕이나 푸른 나무(그늘)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는 우상숭배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열왕기하 17:10 같은 구절은 *“아세라 우상을 세웠더라”*는 표현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라는 맥락과 함께 나옵니다.
이는 곧 아세라 숭배(‘아세라 상’, ‘아세림’이라 불리는 목상)를 세우는 행위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진 제사 행위가 결합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2. ‘푸른 나무’와 ‘아세라 숭배’의 배경
- 아세라(Asherah) = 풍요·생명력의 여신
- 고대 가나안 지역(우가릿 문서 등)에서 아세라는 다산, 풍요, 생명력을 상징하는 신으로 등장합니다.
- 성경은 우상숭배를 금지하지만,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자연(특히 나무, 숲)을 통로로 여신의 생명력을 기원했을 것으로 봅니다.
- 왜 푸른 나무인가?
- 고대 근동에서는 늘 푸른 나무나 잎이 무성한 나무를 생명·다산의 표지로 여기거나, 그 밑에서 제사를 드려 신적 축복을 구하는 관행이 흔했습니다.
- 즉,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렸다는 성경의 표현은, 가나안식 풍요·다산 신앙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던 장면으로 이해됩니다.
- ‘아세라 숭배 = 나무 기둥(목상) 숭배’
- 성경에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라”는 명령(예: 출 34:13, 신 7:5 등)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아세라 숭배가 주로 ‘나무 기둥(wooden pole)’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예배하는 형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때 “살아있는 나무를 직접 숭배했다기보다는, 나무를 깎아 만든 목상을 중요한 숭배 상징물로 활용했다”는 견해가 주류입니다.
- 그러나 “살아 있는 나무(특히 푸른 나무) 주변에서 그 목상을 세우거나, 또는 그 나무 자체에 신성성을 부여하기도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거론됩니다.
3. 직접 기록 vs. 추정
- 직접 명시된 기록:
- “아세라 신당이 늘 푸른 나무 주변에 건립되었다”는 식으로 구체적·직설적으로 나오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 대신, “(이스라엘이) 높은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산당을 세우고 그곳에 아세라 상을 두었다”는 식의 진술(열왕기하 17:10 등)이 우상숭배 전반과 아세라 목상을 함께 언급합니다.
- 학계의 일반적 추정:
- 아세라가 생명·다산의 여신이므로, “푸른 나무”의 상징성과 결합해 숭배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 실제로 성경의 표현 “모든 푸른 나무 아래”가 반복되며, 그 맥락에서 아세라 우상을 파괴하라는 명령이 등장하기도 하므로, **“푸른 나무 주변에서 곧잘 아세라 숭배가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간접 증거는 존재합니다.
4. 결론 및 정리
- ‘아세라 신당이 푸른 나무 근처에 주로 있었다’는 직접적인 문헌 기록은 없음.
- 구약성경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이교적 제사를 드렸다” / “아세라 목상을 세웠다”를 자주 연결하여 언급하나, 이를 단숨에 “항상 아세라 신당은 푸른 나무에 인접했다”라고 단정해 말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나 ‘푸른 나무 = 생명력 상징’ + ‘아세라 = 풍요·다산 여신’이라는 고대 근동 종교문화적 배경
- 결과적으로, 푸른 나무/숲과 아세라 숭배가 함께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 열왕기하 17:10처럼 “푸른 나무 아래 아세라 상(Asherim)을 세웠다”는 표현이 대표 사례입니다.
- 학계 시각
- “고대 이스라엘 주변 문화에서 자연 숭배(특히 나무 숭배)가 많았고, 아세라 숭배 또한 나무(목상)를 통해 표상되었다”는 점을 종합해 보면,
- 아세라 숭배가 ‘푸른 나무’ 주변에서 자주 이루어졌다는 것은 성서와 고고학적으로도 합리적 추정입니다.
- 다만 “아세라 신당이 늘 푸른 나무에 붙어 있었다”는 식의 단정적 서술은 성경에서 직접 찾아보기 어려우며,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진 우상숭배 중 하나로 봐야 한다는 것이 보다 균형 잡힌 결론입니다.
핵심 요약
- 구약성경에는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아세라 등)을 숭배했다”는 표현이 반복 등장하여, 아세라 숭배와 푸른 나무가 자주 결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아세라 신당이 반드시 푸른 나무 곁에 세워졌다”는 식으로 직접 언급하는 문헌은 없고, 주로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 숭배가 있었다”는 포괄적 비판이 나타납니다.
- 이를 종합하면, 아세라가 대지의 생명력(풍요)을 상징했기 때문에, 푸른 나무 주변에서 제사를 드리는 관습이 충분히 있었으리라는 것은 합리적 추정이지만, 구체적·직접 기록은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수준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됩니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성경 외의 고대 근동 문헌(우가릿 문서·고고학적 자료 등)에서도 “아세라 신당이 주로 어디에 존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일컫는 직접적인 기록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아세라 신당은 반드시 숲(또는 푸른 나무) 근처에 세웠다”는 식의 장소적 특정성을 분명히 밝혀주는 고대 문헌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간접적 단서들을 통해 “아세라(Asherah)는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여신으로서, 자연 숭배(특히 나무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형태로 예배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합니다.
1. 우가릿(Ugarit) 문서 속 아세라
- 우가릿(라스 샴라) 문서에서의 아세라
- 우가릿 문서(주전 14~13세기 경)에는 아세라가 ‘엘(El)의 배우자’이자 다산·풍요를 관장하는 여신으로 등장합니다.
- 그러나 **‘아세라 신전을 어디에 지었다’**라는 식의 구체적 장소 묘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 주로 신들의 이야기(예: 바알 신화) 속에서 아세라가 다른 신들과 교섭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내용 등이 있을 뿐, 예배 실천(신전·제의 장소)에 대한 직접 언급은 제한적입니다.
- 아세라 숭배 양식에 대한 추정
- 우가릿 문서와 고고학 자료를 종합하면, “아세라 숭배가 나무·목상(wooden poles)과 관련이 있다” 정도는 어느 정도 뒷받침됩니다.
- 그러나 “신전을 어떤 지형(예: 언덕, 숲)이나 특정 식생(예: 푸른 나무) 근처에 두었다”는 식의 문헌적 증언은 없습니다.
2. 고대 이스라엘 주변의 고고학적 자료
- 쿤틸렛 아즈루드(Kuntillet Ajrud)와 “야훼와 그의 아세라”
- 이스라엘 남방(시나이 반도 북부) 쪽의 요새 혹은 여행자 숙소로 추정되는 유적지(주전 8세기 무렵)에서 발견된 여러 도자기 파편(파피루스 아님)에 “야훼와(및) 그의 아세라”라는 문구가 언급됩니다.
- 여기서 “그의 아세라”가 여신 아세라(Asherah)인지, 아니면 어떤 상징물(목상, 상징기둥)인지는 학계에서도 논쟁 중입니다.
- 하지만 이 또한 예배 장소(신전)가 ‘특정 나무나 숲 근처’였다고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 유물에 남은 그림, 문구 등을 통해 “아세라 숭배가 이스라엘 신앙과 혼합되기도 했다” 정도는 알 수 있으나, 구체적 예배 장소 구조나 입지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 여성 토르소·‘아세라’로 추정되는 토기상들
- 고대 이스라엘 지역 발굴에서 출토되는 여성 토르소(흙 인형)들이 종종 ‘아세라 상’으로 추정됩니다.
- 이 역시 가정(家庭)이나 개인적 차원의 풍요·다산 기원 신앙을 보여줄 수 있을 뿐, **“신당 위치”**에 대한 단서가 되지 못합니다.
- 일부는 가정에서 개인적 숭배(어쩌면 아세라 숭배)를 했을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공적 신전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는 없습니다.
3. 아세라 신당의 ‘주요 입지’에 대한 전반적 평가
- 성경에서만 간접적으로 ‘높은 곳’, ‘푸른 나무 아래’
- 성경(열왕기, 예레미야, 에스겔 등)에는 “높은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 산당을 세웠다”는 구절이 반복 등장하고, 아세라 목상(아세림)을 그곳에 세웠다는 맥락이 발견됩니다.
- 하지만 이는 성경 내부 기록이지, *“성경 외의 고대 근동 기록”*은 아닙니다.
- 또한 성경도 “아세라 신당은 항상 숲이나 푸른 나무 옆에 존재했다”를 구조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가나안식 우상숭배 전반(주로 자연 숭배와 관련)과 아세라(나무 기둥) 숭배가 섞여 있었다고 책망하는 톤입니다.
- 고대 근동 문헌에 직접적 설명이 부족
- 우가릿 자료나 중간기(鐸문서, 다른 도시 국가 문서 등)에서도, ‘아세라 신당’의 구체적 위치나 건축 양식을 소개하는 문헌이 아직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 오히려 바알 신전, 다곤 신전 등에 관한 언급이나 도시 신전(temple) 목록 등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아세라만을 특정하여 “그 신당은 00에 위치했다”는 식 기록은 매우 희박합니다.
- 학계 일반적 추정
- 아세라가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하므로, 자연 숭배(특히 숲, 나무)나 물(샘, 강) 등이 있는 장소가 예배에 자주 쓰였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 그러나 이는 “성경의 언급 + 고대 근동의 일반적 자연 숭배 관습”을 결합하여 추정하는 것이지, 직접 문헌이 남긴 증언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4. 결론 정리
- 고대 근동(우가릿 등) 문헌
- 아세라(Asherah)가 엘(El)이나 바알(Baal)의 배우자, 풍요·다산 여신으로 등장한다는 ‘신화적·종교적 지위’는 비교적 분명히 확인됨.
- 다만, “아세라 신당이 주로 어디에 존재했다”는 구체적 장소나 입지를 기록한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음.
- 고고학적 자료
- 쿤틸렛 아즈루드, 다양한 토르소(흙 인형) 등에서 아세라 숭배 흔적이 보이지만, 그 예배 공간의 ‘위치·환경(예: 나무, 숲 등)’을 특정하기엔 한계가 있음.
- 학계 시각
- 성경과 달리, 고대 근동 문헌만으로는 아세라 신전을 “어느 지형”에 세웠는지 알 만한 직접 증거가 희소하다.
- 일반적으로 “자연 숭배, 나무 기둥(목상) 숭배, 생명력 상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숲 또는 푸른 나무와 연관된 제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은 하지만, 이는 간접적·추론적 판단이다.
결론
현재까지 발견된 고대 근동의 문헌 자료(우가릿 텍스트, 고고학적 유적 등)만으로는 “아세라 신당이 구체적으로 어디(푸른 나무 옆, 언덕, 도시 신전 등)에 존재했는지”를 확정할 직접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 밖 자료에서 아세라 숭배의 위치나 방식이 세부적으로 기술된 문헌은 극히 드물며, 대부분은 “아세라가 풍요의 여신이자 나무(목상)와 결부됐다”는 정도를 보여줄 뿐, 신당의 위치를 명시해 두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