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owershipers

Worshipers following God's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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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 순교 – 순종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에 다니는 것일까요? 기도하는 것일까요? 성경을 읽는 것일까요?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구별된 백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율례와 규례를 지키며 살고자 했습니다. 먹는 것, 씻는 것, 안식일, 정결, 공동체 안에서의 질서까지, 삶의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따르려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비슷하게 말씀을 따르려고 하면서도, 그 이유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이미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며, 나를 다시 살리실 분이심을 믿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순종하는 것과, 구원하신 분을 믿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중심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방향이라면,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참으로 살아 계신 주님이시기에, 그분을 믿고 따르겠다”는 방향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거래가 아닙니다.
점수를 따기 위한 행동도 아닙니다.
불안해서 억지로 맞추는 종교 생활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믿음의 표현이고, 신뢰의 열매이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증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조금 좋은 말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정말 살아 계신 주님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왕이시고, 죽음을 이기신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증인”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 나중에는 “순교자”라는 뜻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이 그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목숨을 걸었던 이유도 “이렇게 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계산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신 분이라면, 그분의 말씀도 참되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왕이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그분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순종은 의무 이전에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짜이시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
그 고백이 바로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믿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증인의 삶이 가벼워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증언은 대개 일상의 작은 충성 속에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정직하려는 선택,
친구를 놀리고 따돌리는 분위기에 섞이지 않는 선택,
인기보다 옳은 것을 택하는 선택,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약한 사람 편에 서는 선택,
인터넷과 SNS에서 남을 쉽게 상처 주는 말을 남기지 않는 선택,
혼자 있을 때도 하나님 앞에 선 사람처럼 행동하려는 선택,
이런 것들이 다 증인의 삶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이 단지 “착하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강한 자만 보지 않으시고 약한 자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쓸모 있는 사람만 찾지 않으시고 버려진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보복보다 용서를, 무관심보다 사랑을, 자기 높아짐보다 섬김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예수님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무서워서”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지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따릅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삶이 참되다고 믿기 때문에 닮아 가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승리하실 분임을 믿기 때문에,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늘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 눈치를 보고, 때로는 두려워하고, 때로는 세상의 방식대로 반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증인이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증인은 넘어져도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실수해도 회개하고, 흔들려도 다시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는 사람입니다.
완벽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주님을 향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증인의 삶은 자기 의지만으로 버티는 삶도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자기 성격이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마지막 승리가 주님께 있다는 믿음이 그들을 붙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와 공동체 안에서 주님을 더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증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증인의 삶은 결심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아는 데서, 주님을 사랑하는 데서, 주님을 바라보는 데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합격하기 위한 삶”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사랑하시고 붙드시는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드리는 응답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식과 법, 곧 그리스도의 길과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을 사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 앞에 드러내는 증언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도 증언입니다.
용서하는 것도 증언입니다.
혼자 있을 때 거룩을 지키는 것도 증언입니다.
약한 친구를 외면하지 않는 것도 증언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증언입니다.
내 말투와 선택과 태도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을까요?
내가 있는 자리,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을까요?
오늘 한 번에 대단한 일을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작은 충성입니다.
작은 선택 하나로, 작은 말 한마디로, 작은 친절 하나로, 작은 정직 하나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특별한 사람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오늘을 충성되게 사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피 흘리는 순교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자기부인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무거운 의무만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믿는 사람의 기쁨 있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기에, 나는 그분의 말씀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기에, 나는 그분의 길을 따릅니다.
예수님이 참된 주님이시기에, 나는 오늘의 삶으로 그분을 증언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증언 – 순교 –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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