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의 진실과 거짓”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확실히 실재했던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에스더서에 대해서도 분석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착에서 보면 에스더서는 완전히 지어낸 소설이다, 후대에 쓰여진 작품이다 하는 식으로 논란이 분분한데…. 기분은 나쁘지만 뭐라고 반박해야 할 지 몰라서요. 한번 알아봐 주시면 감사…..”
오늘 지금껏 조금씩 조금씩 준비하고 써왔던 ‘에스더 강해’를 마침내 끝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하고 같이 먼저 나눌 수 있는 기쁨을 갖고자 포스팅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성경에 근거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처음 강해서를 쓰다보니 미숙한 점도 많습니다.
은혜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성경 전체에서도 손꼽을 만한 명문장을 담고 있는 에스더 서.
이 땅의 수많은 크리스천 부모님들께 귀여운 따님의 이름으로제공해 주기도 했습니다. 제 와이프 이름도 어렸을 때는 ‘에스더’였다고 하네요. 저도 중고등부 시절에 처음으로 우승한 성경 골든벨의 범위가 에스더서였기에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공책에 에스더서를 모조리 베껴 쓰면서 달달 외웠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에스더라는 이름이 열 명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터라 더없이 친숙한 이름이기도 했구요.
어쨌든 질문을 받았으니 저는 이스라엘에서 공수해 온 무교병을 씹어 먹으면서 추리와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에스더서를 연구하면서 가장 많은 부분에 의존한 것이 <추리>였습니다. 추리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미루어 생각하고, 이미 알려진 사실을 전제로 하여 새로운 판단이나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에 주력하였지요.
에스더서를 꾸며낸 거짓 소설이라 하는 자들의 논리에 반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리 추리라 해도 일단 말이 되어야 하고 상식과 개연성이 있어야 하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우선 전제로 깔아두어야 하는 것은 <성경의 기록이 무조건 사실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전제를 바탕으로 중심을 잡아야만 여타의 증거나 역사 기록 등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현재의 지배자에 의해 역사는 얼마든지 변조되고 날조될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의 기록만이 어떠한 가필도, 조작도 없이 전해져 온 것입니다.
“그건 니네 예수쟁이들이나 하는 소리지, 그걸 어떻게 믿어? 증명할 수 있어?”
네,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단언컨대 성경의 기록이 일점일획도 구라가 아니라 펙트임을 가장 쉽게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주인공은 에스더, 모르드개, 아하수에로 왕, 하만입니다. 이 중에서도 타이틀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에스더.
에스더라고 하나 영어로 하면 star, 즉 별입니다.
본명은 하닷사입니다. 진 주인공인 모르드개와는 양부녀 사이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삼촌, 조카 사이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킹제임스 성경에 보면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굳이 말하면 사촌이지요.
이 두 분의 이름부터가 비범한데 모르드개는 바로 바빌론의 주신인 “마르둑”에서 딴 것이며 에스더는 바빌론의 여신인 “이쉬타르”에서 딴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달리 표현하면 “이쉬타르와 마르둑”이라고 써도 되며 공교롭게도 바빌론 신화에서도 이쉬타르와 마르둑은 사촌간으로 묘사되어 있으니 참 신기한 인연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포로들 후손이니 그 동네 토착 이름을 썼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아이들(?)처럼 창씨개명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고학 연구 결과 크세르크세스 왕의 치세에 페르시아 수도 수사의 왕궁에 “마르둑 아이” 즉, “모르드개”라고 하는 관리가 실존했다는 것도 밝혀진 바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투톱인 에스더와 모르드개 중 모르드개의 존재는 확연히 증명된 것이죠.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은 역사에 나오는 “크세르크세스 1세”입니다. 영화 300에서 나왔던 그 <관대한> 왕이지요.
의외로 정말 역사에서도 포악하고 잔인한 면과 더불어 관대하고 섬세한 면이 동시에 나타나 후세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에스더서만 본다면 그는 에스더와 유대인들에게는 참으로 관대한 왕이요, 유대인의 대적들에게는 참으로 포악한 왕이라 하겠습니다. 에스더서를 그냥 겉으로 읽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 출신 왕비의 꾐에 빠져 제 나라 국민을 7만 5,800명이나 쳐죽인 넋나간 공처가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역사가 사서에는 크세르크세스 왕의 왕비는 크세르크세스의 부왕인 다리우스 왕의 여동생과 페르시아 유력 귀족인 오타네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스트리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크세르크세스와는 외사촌지간이 되지요.
당시 페르시아의 법률에는 정해진 페르시아의 일곱 가문에서만 왕비를 취할 수 있다고도 되어 있습니다.
대개 에스더서를 꾸며낸 문학이라 하는 이들은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엄연히 아메스트리스라고 되어 있는데 에스더가 어디 있냐? 라고 반박을 하며, 에스더서를 인정하는 이들은 아메스트리스를 폐위된 전 왕비 와스디와 동일 인물로 여기고 있지만 사실 역사서에서 아메스트리스는 폐위된 적이 없다는 게 함정입니다.
그녀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아닥사스다)가 아하수에로의 왕위를 계승했다는 점으로 볼 때 폐위되지 않은 것이 확실합니다. 조선시대 연산군의 예에서 보듯 왕비를 폐위했다면 그 아들이 왕위에 올랐을 때 왕비 폐위에 가담한 신하들이 무사할 수 없는 법이지요. 그러니 아메스트리스가 와스디라는 설은 사실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에스더 문학론과 에스더 실재론을 표방하는 두 그룹 모두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 그것은 바로 역사서에 등장하는 크세르크세스의 왕비 아메스트리스가 실은 에스더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메스트리스라고 하지만 그리스어로 표기한 것이고 실제로 그 동네 발음으로 하면 <후타오싸> 정도로 들리는 발음이라고 합니다. 에스더의 본명이 <하닷사>라는 걸 생각해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번 더 쐐기를 박는다면 아메스트리스를 아카드어로 표기하면 <암미-이쉬타르> 뜻인즉 <빛나는 이쉬타르>입니다. 그런데 <빛나는 이쉬타르>를 한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쉬타르-우다-샤>로 표기되는데 이것을 꼼꼼하게 발음해 보면 <에스더-하닷사>가 되는 것이죠. 이로 미루어 볼 때 역사에 등장하는 아메스트리스 왕비가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마지막으로 에스더서의 메인 빌런인 하만. 지금도 부림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축제(라고 쓰고 술판이라 읽는다…)를 벌이는데 술잔을 높이 들 때 외치는 구호가 “모르드개에게 축복을!!”, “하만에게 저주를!!!”입니다. 그 두 개의 구호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지면 축제가 마무리되는 것이지요.
히틀러의 전생이라 할 만한 하만. 이자에 대해서도 논란은 있습니다.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이라는데 “아각 사람”이라는 종족이 어디 있느냐? 아각이라면 사울에게 붙들려 와서 사무엘의 칼에 쪼개져(!!!) 죽는 아말렉 왕 아각뿐인데 그 아각의 후손이 페르시아까지 갔다는 게 말이 되냐? 가톨릭 성경에는 “마케도니아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페르시아가 망하는 것을 알고 있는 후대 사람이 하만을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설정해서 꾸며낸 것 아니냐? 등등 다양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약간의 추리력을 필요로 합니다.
과연 하만은 아각 사람인가, 마케도니아 사람인가. 일단 하만이라는 이 인물의 존재 자체는 의심할 필요가 없을듯합니다. 에스더, 모르드개, 아하수에로 모두 실제 인물인데 하만만 가공인물일 이유는 없지요. 다만 그의 출신성분이 논란인데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아각 사람과 마케도니아 사람 둘 다 정답입니다.
하만 또한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으로 아말렉 멸망 후 방랑 생활을 하다가 흘러흘러 마케도니아까지 가서 정착한 사람의 후손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하여 아각 사람이자 마케도니아 사람인 것이죠. 게다가 어느 집안,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이 표기된 이상 실존 인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2)
에스더 1장에서는 우선 크세르크세스 왕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사람이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127개 도를 (관대하게) 다스리고 수도 수사의 궁전에서 모든 관리들을 불러모아 (관대하게) 술판을 벌입니다.
사실 여기서부터 반론은 들어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리들이 6일도 아니고 6개월씩이나 술판을 벌이고 있는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가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리스 정벌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때인만큼 군대의 사열식을 겸하여 중앙과 지방의 무관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원정군의 물자와 군수품을 조달해야 할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 많은 무관들과 관리들이 한번에 다 모일 수는 없는 터, 오늘은 에티오피아, 내일은 메디아, 모레는 박트리아. 글피는 리디아 하는 식으로 각 지역의 관리들을 로테이션으로 불러 모아 판을 벌인다면 제국의 영토가 127개 도이니 180일 안에 얼추 쇼부를 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창 술이 들어가자 슬슬 크세르크세스 왕은 신하들에게 와이프인 와스디를 보여줄 생각을 합니다. 제국의 왕후이니 미스 페르시아 진은 될 터, 와스디라는 이름 자체도 사랑스럽다, 예쁘다 뭐 그런 뜻이라 하니 금상첨화입니다. 왕관을 예쁘게 쓰고 메이크업도 하고 술자리에 나와 줄 것을 부탁받은 와스디는 그러나… 남편이자 대왕인 크세르크세스의 부탁을 개코로 지져버립니다. 크세르크세스 왕은 그냥 예쁜 마누라를 자랑하고픈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와스디는 그 제의를 거절하는데 이것이 왕에게는 엄청난 분노를 일으킵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 어느 아내가 술에 꼴아 있는 남자들 앞에 꽃단장하고 나가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마담도 아니고…. 심지어 제국의 왕비인데. 게다가 와스디도 여인들을 모아 자신이 주관하여 파티를 벌이고 있는 마당에 아랫것(?)들 앞에서 가오가 있지 않겠습니까? 와스디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어쨌든 단단히 빡친 크세르크세스 왕은 술김에도 그냥 처리하지 않고 규례에 따라 현자들에게 문의하여 법대로(?) 처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다 같이 술에 꼴아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어째 법조인들과 현자라는 것들이 그 상황에서 왕을 권면하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직언을 하기는 개뿔, 와스디 왕비를 쫓아내라는 소리를 조언이랍시고 합니다. 그래야 아내들이 남편을 멸시하지 않는다는 말 같지도 않는 소리와 함께.
그 말에 진심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다들 집에서 부인에게 얻어맞고 사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다 똑같은 놈들끼리 모여서..
좌우지간 그날로 와스디 왕비는 폐서인이 되고 크세르크세스 왕은 이혼남 신세가 됩니다. 돌싱이 되고서야 마누라 생각이 났던지 왕이 와스디를 다시 데려올까 하자 대신들은 기절초풍을 하여 (당연하지! 와스디가 돌아오자마자 그 신하들을 가만 놔두겠습니까? 인현왕후와 장희빈 얘기를 잘 생각해 보라구) 전처와 재결합하지 말고 새로 예쁜 아가씨를 뽑아서 왕비로 삼으라고 조언합니다.
잘 읽어보면 새 왕비를 어떻게 모집(?)할지와 어디로 데려와서 누구한테 맡길지까지 소상하게 진언하는 것을 보면 이노무 신하들은 크세르크세스 왕과 와스디 왕비가 재결합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저지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남자로서) 싫어할 턱이 없는지라 크세르크세스 왕은 ㅇㅋ 한 마디로 동의하고 마침내 에스더 서의 서막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모르드개입니다. 베냐민 지파 기스의 증손, 시므이의 손자, 야일의 아들이랍니다.
사실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끌고 갔던 유다의 여호야긴 왕과 함께 끌려갔던 포로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끌려갔던 자”라고 모르드개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모르드개는 거의 100살에 가까운 노인이어야 하고 에스더는 아무리 못해도 70살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들며 에스더서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모르드개가 그때 끌려온 사람이라고 칭하는 의미이겠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끌려온 유다 포로의 후손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한글 성경에서의 표현이 좀 불명확하게 되어 있어 그렇지 영어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 왕 여호야긴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끌려온 자”가 모르드개가 아니라 모르드개의 증조할아버지인 “기스”를 칭하는 것입니다.
즉, 그 표현의 원래 의미는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 기스의 증손, 시므이의 손자, 야일의 아들인데 그의 증조부인 기스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끌고 갔던 유다의 여호야긴 왕과 함께 끌려갔던 포로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끌려갔던 자”라는 의미입니다.
증조할아버지 대에 포로로 끌려와 바빌론에 왔다가 모르드개의 대에 이르렀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모르드개의 출신성분에 대해 의심하실 필요, 더 이상 없습니다.
새로이 미스 페르시아 선발대회가 열리자 모르드개도 금과옥조처럼 키워 온 사촌여동생 에스더를 궁으로 보냅니다. 유다 포로 출신임을 밝히지 말고 보안을 유지하라는 엄명과 함께. 그리고 모르드개는 매일 여인들이 머무는 궁궐 전각 앞을 순찰하며 에스더를 지켜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 개입하심으로 에스더는 미스 페르시아 진의 왕관을 쓰게 됩니다.
크세르크세스 왕이 좋아서 입이 찢어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왕관을 씌워주고 파티까지 열며 에스더를 물고 빨던 것도 간데없이 불과 그 다음 절에서 왕은 또다시 처녀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남자의 사랑 따위는….) 그리고 모르드개가 왕궁의 성문에 버티고 앉아 있으며 에스더는 여전히 모르드개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한 보안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한번 추리를 펼쳐 보았습니다. 사실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아 그렇지 모르드개는 대개 생각하는 것처럼 농사짓고 요들송이나 부르던 그런 평민 백성이 아닙니다. 2장 5절에 보시면 “수산 궁에 한 유대인이 있었으니”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궁정에서 근무하는 관리였습니다. 쉽게 말해 다니엘이나 느헤미야처럼 페르시아 제국에 등용되어 요직에 올라간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매일 하렘을 순찰하며 자신의 여동생인 에스더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에서 모르드개는 보통 관리도 아니었습니다. 남녀가 유별한 시절에 하렘을 내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순찰할 수 있었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사실 가톨릭 성경에 보면 모르드개는 1장부터 등장합니다. 1장부터 이미 모르드개는 궁정의 내시인 빅다나와 데레스가 왕을 모살하려 하는 음모를 엿듣고 그에 대한 탐문수사를 한 후 지체 없이 고변하여 그들을 처형당하게 합니다. 그리고 빅다나와 데레스가 모르드개에 의해 적발되고 처형된 것을 전해들은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앙심을 품게 됩니다. 이후에 우리가 보는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서 1장이 시작됩니다.
즉, 지금 우리가 보는 에스더서는 1장의 앞부분이 편집된 이야기죠. 어쨌든 이러한 기록들을 미루어 볼 때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국왕 직속의 첩보기관에 근무하는 요원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대 페르시아에는 소위 ‘왕의 눈’, ‘왕의 귀’라 불리는 국왕 직속의 암행어사 겸 첩보원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의 성문에 앉아 있다는 것으로 보아 수사 왕궁의 수문장 또는 경비대장 혹은 국왕 친위대의 지휘관 직책도 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빅다나와 데레스의 역모를 엿들은 후 본인의 추가적인 탐문수사를 거친 후 왕에게 보고했다는 것으로 보아 말단 직원도 아닌 어느 정도 직급이 있는 간부요원이었다는 추리도 가능합니다. 또한 입궐하는 에스더에게 출신성분과 자신과의 혈연관계를 숨기고 보안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에스더가 부지중에 누설하게 되면 에스더를 포섭하여 모르드개에게서 무언가를 캐내려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으며 제국의 첩보요원이 왕비의 양부 겸 사촌오라비라고 하면 모양새가 영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 앙심을 품는 자들이 에스더에게 위해를 끼칠 수도 있구요. 결국 모르드개는 첩보요원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보안수칙을 입궐하는 에스더에게도 준수하게 한 것입니다.
아직 이때는 하만에 의한 유대인 말살 음모가 진행되던 때도 아니요, 유다 포로 출신으로 전대의 다니엘이 수석 총리에 오르고 후대의 느헤미야가 술관원 겸 속주 총독까지 오르고 모르드개 본인이 첩보기관의 간부요원을 거쳐 왕궁 성문을 맡는 수문장 내지 경비대장, 국왕 친위대의 지휘관까지 올라가는 마당에 유다 포로 출신이라는 것이 하등의 걸림돌이 될 것도 없었기에 더더욱 이러한 가설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3)
3장이 시작되면 역모를 진압한 모르드개 대신 뜬금없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승진하여 재상으로 임명됩니다. 명색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크세르크세스 왕도 자신이 임명한 재상인 그에게 모든 신하들이 절을 하고 경의를 표하도록 명령했지요. 과연 그 말대로 그가 왕궁을 드나들면 모든 신하들이 넓죽 엎드려 절하고 경례를 했건만 뜻밖에도 모르드개만은 절을 안 합니다. 이에 주변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왜 어명을 따르지 않고 절을 안 하냐고 해도 모르드개는 요지부동입니다.
과연 모르드개는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명시되어 있는 하만에 대한 신원조회를 하여 그가 과거 사울 왕에 의해 멸망하고 사무엘에 의해 처형당한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임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왕의 명령이라 해도 유대인으로서 아말렉의 후손 따위에게 절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주변에서 하도 갈궈대니 결국 모르드개는 자신이 유대인이고 아말렉의 후손 따위에게 절할 수는 없다고 내질러 버립니다.
아니나다를까 간신배들이 뽀르르 달려가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유대인 출신임을 고해 바쳤고 하만은 가뜩이나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뻣뻣하게 구는 것도 기분 나쁜 판에 자신의 동족들을 몰살시키고 조상이던 아각 왕을 끔살시킨 유대인이라는 것에 이를 갈기 시작합니다. 이참에 개인적인 복수도 하고 조상들의 원수도 갚을 겸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 내의 유대인들을 다 쓸어버리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되지요. 그래서 그는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가서 유대인들이 제국의 법도를 준수하지 않고 동화되지도 않고 영 뻣뻣하게 굴고 있으니 자신이 나서서 그네들을 몰살시키겠다고 진언해 버립니다. 심지어 은 1만 달란트라는 거액의 뇌물까지 바치면서요. 마침내 모두가 다 아는 아달월(12월) 13일에 모든 유대인들을 진멸하고 그들의 모든 소유를 빼앗도록 하는 법령이 반포됩니다.
이때는 크세르크세스 왕 재위 12년. 앞서 180일짜리 파티를 열고 기세 좋게 그리스를 침공했다가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그리스에게 얻어터지고 도망쳐 온 지라 국력은 국력대로 피폐하고, 나라는 나라대로 소란스럽고, 패전으로 인해 왕의 위엄과 가오도 떨어지고 여러 모로 왕에게 있어서는 악재의 연속이었습니다. 유사 이래로 이런 경우에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이벤트를 열거나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바로 유대인들이 그 희생양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하만이라는 재상이 알아서 다 처리하겠다고 하니 왕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도 없을 터이요, 유대인들에게 백성들의 불만을 돌리고 그들을 멸절시키며 재산들을 빼앗아 국고로 들인다면 패전으로 인한 손실도 메꿀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설명하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유대인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한 음모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하만의 역모였으며 이것을 뒤늦게 깨달은 크세르크세스 왕은 하만에 대해 극도로 분노하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 합을 맞춘 크세르크세스 왕과 하만은 술잔을 마주치며 부어라 마셔라 합니다. 그러나 그 법령이 반포되자 페르시아 수도 수사 시내는 혼란에 빠집니다.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당대의 페르시아는 매우 모범적인 다문화 국가였습니다. 모든 민족이 동등하게 대우받았고 본토 페르시아인이나 타민족 출신이나 차별은 없었습니다. 국가 정책이 그러니만치 백성들도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그런 마당에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재산을 약탈하라는 법령이 반포되었으니 페르시아 백성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겁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멸망의 당사자인 유대인들은 오죽했겠습니까? 일단 모르드개부터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출근하는데 그런 옷을 입고는 왕궁으로 들어올 수 없다며 위병들로부터 제지를 당합니다. 왕명이 도착하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애곡하고 금식하고 대성통곡을 했으며 수도 없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드러눕기에 이릅니다.
에스더 왕비의 시녀들과 내시들도 눈과 귀가 있는 터라 그것을 얼른 왕비에게 고하는데 에스더도 매우 슬퍼하며 궐 문 밖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새 옷을 보내어 굵은 베옷을 벗고 갈아입게 하려 했으나 모르드개는 거절해 버립니다. 결국 에스더는 측근 내시인 하닥을 모르드개에게 보내 자초지종을 알아보게 합니다. 모르드개는 하닥에게 하만의 음모에 대해 얘기하고 왕에게 잘 좀 말해줄 것을 부탁하지요.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당시에는 왕의 부름이 없이 왕의 면전에 함부로 나갔다가 왕이 금홀을 뻗어 알현을 허락하지 않으면 즉각 목이 잘려나가는 무서운 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필 이 와중에 에스더는 근 30일 동안이나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부름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구요. 여러 모로 불리한 판세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모르드개는 “너님이 왕비 자리에 있다고 무사할 거라 생각하지 마셈. 이 와중에 너님까지 입 다물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든 구원받을 때 너님은 절단날 거임.”이라는 (패드립을) 초강경 발언을 하고 결국 에스더는 “ㅇㅋ 죽으면 죽을란다. 그까이꺼 대충 갔다올 테니 유대인들 싹 모아서 같이 금식이나 하고 있으쇼.”하고 3일 금식 후 꽃단장을 하고 남편인 왕에게로 나갑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왕에게 나가는데 사실 이 부분은 가톨릭 성경에 좀 더 맛깔스럽게 (오글거리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일 예쁜 옷을 꺼내 입고 목욕재계를 하고 꽃단장을 했지만 3일이나 금식하고 멀쩡할 수는 없을 터 크세르크세스 왕의 앞에서 얼굴이 창백해져 비실비실 하더니 픽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자 부름도 없이 멋대로 에스더가 자신에게 나온 것에 대해 언짢아서 인상을 쓰던 크세르크세스 왕은 기겁을 하여 얼른 옥좌에서 내려와 에스더에게 금홀을 내밀어 만지게 하고는 몸소 에스더를 끌어안아 부축합니다.
적혀 있는 것을 기초로 직설적으로 적어보면 “왕비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녀를 팔에 안고 다정한 말로 위로하며 ‘에스더, 나는 당신의 오빠(?)이니 안심하시오. 금홀 어쩌고 하는 법은 아랫것들한테나 해당되는 것이고 당신은 프리패스요.’ 하며 금홀을 살짝 에스더의 목에 대었다 떼더니 그녀를 껴안고 입 맞추며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해 보시오.” 라고 했습니다. ‘오빠 믿지’라는 이 드립은 참으로 유서가 깊은 것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청순가련 병약형의 히로인 컨셉으로 왕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인지 에스더는 언제 소박맞았냐는 듯 제대로 왕의 마음을 빼앗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말해도 될 것을 우선 “제가 오늘 술판을 마련하겠으니 하만이랑 손잡고 오십시오.” 합니다.
(아무래도 부창부수라고 뭔가 얻어내기 전에 한상 먹여놓고 손을 내미는 것을 남편에게 배운 듯싶다.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고 며칠씩 얻어먹고 나니 에스더가 요구하는 걸 왕이 끽소리도 않고 들어주지 않나.)
그저 눈에 하트가 뿅뿅 빛나 에스더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주고 싶을 만큼 푹 빠져 있는데 원하는 걸 그냥 말해도 들어줄 것을 자신에게 배운 대로 먼저 한상 먹여놓고 말을 꺼내려는 그 성의에 더더욱 에스더가 사랑스러워 정신이 없는 크세르크세스 왕은 당장 하만을 콜하고 두 절친은 에스더가 차려놓은 술상 앞에 마주 앉습니다. 그러나 한창 분위기 좋고 너무나도 흡족하게 술판을 벌인 후에도 크세르크세스 왕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 말에 에스더는 “제 소원은 내일 제가 두 분을 위해 마련한 술판에 한 번 더 나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 해주시면 내일은 말씀드리겠습니다.” 였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태도에 왕은 물론이요, 하만도 잔뜩 기분이 째져서 왕궁을 나오는데 성문에서 자신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보고 도로 기분이 더러워집니다.
가진 권세로 미루어 보아 저놈을 당장 베어라 해도 무방할 것 같지만 앞에 있는 모르드개도 명색이 국왕 직속 첩보기관의 간부요원이요, 왕궁 친위대의 지휘관이니 당장 그 성문 지키는 위병들도 모르드개의 수하일 터라 거기서 누굴 베라 마라 호령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도 그저 묵묵히 참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집에 와서는 마누라를 앉혀 놓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잔뜩 노가리를 늘어놓고는 (그렇게라도 언짢은 기분을 풀어야지…) 에스더 왕비에게 왕과 함께 초대받은 사람은 나 밖에 없었노라고 (그것이 독사과인지도 모르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모르드개를 보니 다 필요 없고 기분만 나쁘더라고 토로해 버립니다.
그러자 마누라인 세레스와 친구들이 23미터 높이로 교수대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청하여 모르드개부터 거기에 달아버린 뒤에 즐겁게 왕과 함께 파티에 가라고 합니다. 그 말에 잔뜩 고무된 하만은 오래 생각할 것 없이 지금 당장 세우자고 하며 교수대부터 떡 하니 세워버리지요. 교수대까지 세워놓고 다음날이면 모르드개를 목매달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은 하만!! 그러나 아직은 모르드개의 운수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히든 카드! 하나님께서 두 눈 시퍼렇게 지켜보고 계신데 일이 그리 쉽게 풀리도록 놔두신다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지요. 천당부터가 하나님 이하 이십사 장로 아래 구품천사로 계급제도가 착착 갖춰져 있어 관료제가 무엇인지 빠삭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높은 대가리인 크세르크세스 왕부터 다이렉트로 공략하십니다.
하도 술을 마셔 불면증이 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닷없이 잠이 오지 않아 양을 세고 있던 크세르크세스 왕은 (책을 읽으면 빨리 잠든다는 것을 떠올렸는지) 역대 기록을 가져와 내시로 하여금 읽게 합니다. 그러다가 모르드개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궐문 경비 내관 빅다나와 데레스의 음모를 적발한 대목을 듣고는 눈이 번쩍 뜨여 그때 이후로 모르드개에게 무엇을 내렸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뭣에 씌었는지 왕의 목숨을 구한 충신인 모르드개에게는 아무 상급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 크세르크세스 왕은 고민하다가 (왕이나 대감님의 18번 대사인) “밖에 게 아무도 없느냐?” 드립을 시전합니다.
하필!! 그때 하만이 대전 앞뜰에 와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를 교수대에 달겠다는 부탁을 하러 말이죠. 내시들이 ‘하만 대감이 와 있습니다.’ 하자 왕은 얼른 들어오게 합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목매달 결심으로 입을 떼려 하는데 느닷없이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에게 ‘내가 대박 띄워주고 싶은 사람한테 어떻게 해주면 되겠노?’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만은 ‘그게 바로 나야!!’하는 (김칫국 일발 장전) 심산에 얼른 대답하기를 왕의 용포를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왕의 말에 태워서 가장 높은 고관에게 말고삐를 잡게 하고 동네마다 다니면서 자랑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크세르크세스 왕은 무릎을 탁! 치며 빨리 소품들 가져가서 성문에 앉아 있는 유대인 모르드개에게 그대로 해주라고 합니다.
결국 하만은 교수대 어쩌고 하는 소리는 꺼내 보지도 못한 채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을 하고 있던 모르드개에게 임금님 코스프레를 시키고 자신이 마부마냥 말고삐를 잡고 수도 수사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모르드개의 얼굴에 금칠을 해줍니다. 한바탕의 코스튬 플레이가 끝나고 모르드개는 다시 성문 앞으로 갔으나 하만은 멘탈이 붕괴되어 ‘머리를 싸매고 징징 울며’ 집으로 가서 또다시 친구들과 마누라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그 얘기를 들은 부인 세레스와 하만의 보좌관들은 절망에 빠져 모르드개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며 불길한 결론을 내놓습니다. 좀 더 의논을 하고 뭔가 결론을 도출해야 할듯한데 하필 그때 왕궁에서 내시들이 와서는 에스더 왕비가 연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며 하만을 데리고 나가지요. 아마 하만은 이쯤에서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쯤에서 하만이 모르드개를 직접 어떻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여전히 동족들에게 닥쳐올 비운을 생각하며 애통해 하였을지 모르나 적어도 그 자신이 하만에게 위해를 당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강철로 만든 무지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왕의 목숨을 구해준 충신이요, 왕이 직접 용포를 입히고 왕관까지 씌워 사람들 앞에 내보일 만큼 총애를 받은 자를 건드린다는 것은 자살행위였습니다. 선대의 다니엘만 해도 그가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들어간 것은 바빌론 멸망 후 페르시아 치하의 일이고, 바빌론 때만 해도 느부갓네살 생전에는 그 누구도 다니엘을 모함하거나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엎드려 절을 할 만큼 다니엘을 아끼고 신임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엎드려서 절까지 하고 향품을 바친 사람을 건드린다? 날 잡아 잡숴라는 거죠.
파티는 무르익고 크세르크세스 왕은 에스더에게 긴히 묻습니다. ‘어떤 부탁을 하고 싶은지요?’ 그리고 에스더는 더는 사양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이 멸망당하고 학살당하고 진멸당하게 되었음을 밝히지요. 노예시장에 팔려나가는 신세만 되었어도 아무 소리 안 했을 터인데 모조리 죽을 지경에 놓였으니 가만있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바로 이때! 크세르크세스 왕은 정신이 번쩍 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왕비와 왕비의 동족들이 몰살당한다? 그 중에는 자신의 처가댁 식구들과 친척들도 있을 터인데…. 이게 무슨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소리인가? 대체 어떤 놈의 흉계인가? (지도 ㅇㅋ 해놓고서….) 순간적으로 뚜껑이 열린 크세르크세스 왕은 “어떤 눔이 그따위 짓을 해? 어떤 눔이야?” 하고 샤우팅을 합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예쓰!!!! 바로 이때다!!!) 망설임도 없이 “저 눔이요.”하고 하만을 정확하게 가리키지요. 자! 이제 술판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만은 술이 깨고도 모자라 완전히 넋이 나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습니다. (오늘 멘탈붕괴가 몇번인가…) 바로 어제 자기 집에 23미터 높이의 교수대를 세우고 모르드개를 목매달 것이라 의기양양하더니 불과 하루 만에 이제는 도마 위에 오른 고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반전… 자기 앞에 있는 왕비 에스더가 유대인이었다니. 그리고 그 왕비는 이제 도마 위에 오른 고기 신세가 된 자신을 매운탕을 끓여 먹을까, 회를 쳐서 먹을까, 불에 구워 먹을까, 찜을 해서 먹을까 아주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크세르크세스 왕은 분노를 참지 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립니다. 정원으로 나가 잠깐 바람을 쐬며 담배라도 한 대 피워 물 생각이었겠지요. 하만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에스더 왕비에게 다가가 왕비 앞에 엎드려 손을 싹싹 비비기 시작합니다. 하필 그때 크세르크세스 왕이 파티 자리로 돌아오고 에스더가 있는 자리 위에 엎드려 있는 하만을 보며 ‘요 염병할 눔이 이젠 아예 내 앞에서 내 마누라까지 XX하려고 해?’ 라고 소리를 치고 이것은 곧 ‘하만 너는 이제 뒤졌다.’라는 말과 동의어였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친위병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하만의 얼굴을 보자기로 싸고 포박하여 끌어냅니다.
왜 왕은 하만을 보고 에스더를 XX하려고 한다는 말을 했는가 하면 그 당시에는 먹고 마시는 좌석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각진 의자에 앉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널찍한 평상이나 침상 같은 것을 늘어놓고 비스듬하게 드러누워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이 당대의 풍경이었지요. 하만은 에스더가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침상 앞에 엎드려서 빌고 있었던 것인데 왕이 뒤에서 보기에는 누워 있는 에스더를 하만이 XX하려는 폼으로 보기 딱 좋았습니다. 물론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는 너무 화가 나서 한 소리겠지만요.
바로 그때 내시 중 하나인 하르보나가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하만이 자기 집에 23미터나 되는 교수대를 세워 왕을 구한 충신인 모르드개를 목매달려고 한다는 것을 고해바칩니다. 이건 뭐 첩첩산중 설상가상에 금상첨화 점입가경입니다. 울고 싶은 놈 쌍싸대기 날리기도 유분수지 그 말을 들은 크세르크세스 왕은 하만이 마시는 산소조차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당장 그 교수대에 하만을 목매달아 버리라고 호령을 합니다.
하만이 목매달려 있는 그의 집을 크세르크세스 왕은 에스더 왕비에게 선물로 줘버리고 이제서야 승리를 실감한 에스더는 왕에게 모르드개가 자신의 사촌오라비이자 양아버지라고 밝히지요. 왕은 얼른 모르드개를 어전으로 불러들이고 하만에게서 회수한 자신의 인장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하사합니다. 드디어 반격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 에스더는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유대인들을 살려달라는 청을 다시 한 번 힘주어 올립니다. 왕은 즉석에서 오케이!! 하고는 전국에 칙서를 보내 유대인들에게 자위권과 더불어 공세적인 정당방위를 허가합니다. 원래 유대인들이 당하게 되어 있던 것들을 유대인들을 죽이려 하는 자들에게 그대로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지요. 마침내 모르드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에 오르고 왕비의 양아버지로서 국구의 지위에까지 올라 그야말로 군국대사를 한손에 쥔 제국의 2인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감투만으로 그치지 않고 하만의 사주를 받아 유대인들을 멸하려 했던 자들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어 수사의 왕궁에서만도 500명이 죽고 하만의 열 아들을 모두 참하여 효수합니다. 왕궁만 아니라 수사 시내에서도 300명을 죽이고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서 절단난 원수들의 숫자는 7만 5천명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사 새옹지마라 사람 일이란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이 멸망하기로 되어 있던 무서운 날이 빛나는 승리와 영광의 날로 바뀌었으니 에스더서 전체에 하나님이란 단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손길이 확연하게 와 닿습니다. 아무튼 이 일로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갑이 되고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잘 먹고 잘 살고 모두들 행복하게 살았으니 메데타시 메데타시….
추리력이 다시 한번 발동한 것은 이때였습니다. 왜 크세르크세스 왕은 에스더의 말에 극도로 분노하고 분개했던 것일까? 불과 어제까지 물고 빨던 베프이고 절친이던 하만을 한순간에 그리 매정하게 숙청했던 것일까? 단순히 에스더 왕비의 일족인 유대인들을 멸하려 했다는 것만으로? 이 수수께끼를 좀 더 빨리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톨릭 성경에서 표현된 크세르크세스 왕의 칙명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칙명서는 바로 하만의 행위에 대한 크세르크세스 왕의 최종 결론이며 판정이었습니다. 다소 길지만 최대한 그대로 적겠습니다.
(전략) 흔히 권좌에 앉게 된 많은 이들이 친구들에게 국사를 맡도록 위임하고 권유를 따르다가 무죄한 이들이 흘리는 피의 공범이 되어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이 악의에 찬 속임수로 통치자들의 순수한 선의를 기만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사실 페르시아와는 혈통이 전혀 다르고 우리 페르시아인들의 선함과도 거리가 먼 마케도니아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은 (중략) 우리에게서 왕권과 생명을 앗아가려고 꾀하였습니다. 그리고 계교에 찬 교활한 속임수로 우리의 구원자이며 은인인 모르드개와 왕위의 흠없는 동반자인 에스더를 그들의 동족 전체와 함께 파멸시키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고립시켜 페르시아인의 주권을 마케도니아인들에게 넘겨주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악랄하기 짝이 없는 죄인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구렁으로 내던져진 유대인들이 범법자가 아니라 대단히 올바른 법규에 따라 살아가는 시민들임을 압니다. 이들은 가장 높으시고 더없이 위대하시며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중략) 여러분은 열두째 달인 아달월 13일에 그들을 도와주십시오. 만물의 통치자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선택된 민족을 위하여 파멸 대신 환희의 날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날을 여러분의 특별한 날로 정하여 온갖 잔치를 열어 경축하십시오. 그리하여 오늘 이후로 이날이 우리 선의의 페르시아인에게는 구원을, 우리를 거슬러 역적모의를 한 자들에게는 멸망을 기억하는 날이 되게 하십시오. (후략)
페르시아 대왕 크세르크세스가 하만의 행위에 대해 명백하게 “역적모의”, “왕권과 생명을 앗아가려는 행위”, “페르시아인의 주권을 넘겨주려는 생각”이라 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단순히 에스더 왕비에게 빠져 유대인들의 목숨을 살려주려는 그런 측은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왕으로서 명백하게 재상 하만의 역모를 진압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정황적 고증 오류”로 들어지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아무리 하만이 거짓말을 했다지만 자기가 페르시아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이나 되는 것처럼 유대인들에게 자기 백성을 학살해도 좋다고 용인하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 7만 5천명의 인구는 당시에 엄청난 것인데 여자 하나 때문에 그만한 국민들을 몰살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나? 게다가 하만이 마케도니아 사람이고 정말 그런 짓을 했다면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페르시아에게 개박살이 났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책은 마케도니아에게 페르시아가 멸망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후대 사람들이 쓴 것이다.” 입니다.
지금부터 역사매니아가 아니라 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추리로 파쇄해 보겠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아시다시피 다문화 국가요, 다민족 국가이며 제국령 내에 거주하는 국민은 출신 민족이 어디든 모두가 페르시아 국왕의 신민입니다. 거기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백성이 아닙니까? 유대인과 페르시아인을 굳이 구분하여 거론하는 것 자체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입니다. 그 <거짓말>이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제국 왕비의 친정 식구들이 포함된 동족들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를 차지하는 물경 수십 수백만의 거대한 민족인데 그따위 흉계로 제국에 감당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히려는 행위를 과연 국왕이 손가락만 빨면서 지켜봐야 합니까?
7만 5천명의 인구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역모에 가담하여 반역을 꾀하는 자들이 쪽수가 많다고 해서 진압을 안 할 것입니까? 전제 왕권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역모는 곧 삼족을 멸하는 행위이며 저 7만 5천명은 역모에 가담한 자들의 일가친척들도 포함된 숫자일 것입니다. 죽임을 당한 7만 5천명은 단순한 백성이나 국민이 아닌 반역 음모에 가담한 역도들이며 그들의 연좌된 식솔들입니다. 지금 기준에서는 인권 문제 등으로 인해 상상하기 힘들겠으나 당대의 기준으로 역적들의 씨를 말리는 것은 당연한 행위였습니다. 이걸 똑바로 못하면 그 역적의 후손이 선조의 원수를 갚겠다며 난리를 피우게 됩니다.
과거 고려 태조 왕건은 하도 후백제에게 밟히다 보니 원한을 품었던지 죽으면서 유언으로 남긴 훈요 10조에서 ‘옛 후백제 땅인 차령산맥 이남 땅은 풍수지리상 개경을 향해 활을 당기는 지세이니 그쪽 사람은 절대로 등용하지 마라.’고 합니다. 이 유언은 한동안 잘 지켜졌으니 고려 의종 황제 때 차령산맥 이남 출신인 전주 이씨 집안 이의방을 무관으로 등용하게 되었는데 이 양반이 바로 무신정변을 일으켜 고려 황실을 뒤엎으려 한 주역이었지요. 자기 딸을 태자비로 들여 아예 황실을 쥐고 흔들 궁리까지 하다가 라이벌인 정중부에게 살해당하고 고려 조정에 의해 그의 집안이 몰살을 당하는데 이의방의 동생인 이린이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칩니다. 이린은 바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6대조 할아버지로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의 6대 손인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고 고려 왕조를 뒤엎고 조선을 건국하며 고려 왕씨들을 몰살시킵니다.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3만명이 넘게 죽였으니 그야말로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살이었지요. 이 모든 것이 첫째는 태조 왕건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던 탓이며, 둘째는 역적을 소탕한 후 확인사살을 똑바로 하지 않은 탓이었던 것입니다.
하만이 마케도니아 사람인데 과연 그러한 짓을 했다면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마케도니아는 페르시아에게 박살이 났을 것이라는 설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참으로 역사에 대해서 반만 알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당시의 페르시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막강하고 압도적인 최강국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오리엔트 최강국이자 객관적으로 당대에 적수가 없는 막강한 국가였음은 의심할 바 없으나 유독 어떤 나라에 대해서만은 승률이 좋지 못했는데 바로 그리스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하면 압도적인 페르시아 군대를 작지만 단단한 그리스 군대가 일치단결하여 영웅적인 항전을 펼쳐 물리쳤다는 것으로 생각하기 일쑤인데 그것은 마라톤 전투와 테르모필레 전투,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진 페르시아 전쟁 시즌 1이었습니다. 살라미스 해전을 끝으로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은 끝이 났고 이어진 시즌 2는 바로 그리스의 페르시아 침공이었습니다.
유명한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그리스 육군이 페르시아 육군을 몰살시키고 동시에 소아시아의 미칼레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아테네 함대가 살라미스에서 살아남은 페르시아의 나머지 함대를 모조리 쳐부숴 버립니다. 이후 그리스 영토 내에 있던 페르시아의 마지막 거점이던 에이온이 함락되고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와 테베를 비롯하여 전쟁 이전 그리스 영내에 보유하고 있던 영향력을 모두 상실하고 순전히 본토 방어에만 급급한 상황이 벌어지지요.
에스더의 남편인 크세르크세스 왕은 B.C. 465년까지 왕위에 있는데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은 B.C. 448년까지 계속됩니다. 한 마디로 에스더서가 진행되는 동안 페르시아는 끊임없는 전쟁 와중이었으며 다음 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칼리아스 화약이 체결된 후에야 종전을 맞았습니다.
그리스의 페르시아 침공은 실로 가공할 위력이었는데 페르시아 영토인 소아시아 서부 해안지대인 이오니아 일대와 에게 해 전체를 넘어 흑해 연안과 키프로스 섬, 이집트까지 제패하며 지중해의 모든 제해권을 장악하여 페르시아 해군을 반신불수로 만들었고 나일 강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가 그리스 함대를 격퇴함으로 간신히 이집트까지 빼앗기는 것을 막았을 정도였습니다. 밖에서는 조그만 그리스가 거대 제국인 페르시아를 두들겨 패고 있고 안에서는 거듭된 패전으로 사기가 떨어지고 왕권이 흔들리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이후에는 완전히 페르시아가 기강이 무너져 왕위를 다투는 내전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리스 군대를 용병으로 들여와 왕권 다툼에 동원하는 왕족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하만이 마케도니아 사람이었다고 페르시아가 마케도니아를 갈아 마실 여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여기서 우리는 2편에서부터의 화두였던 하만의 행위가 과연 원수를 갚기 위한 목적이었나, 정말 페르시아를 위협하는 역모였는가에 대해 확실한 답을 찾아낼 수 있는데 연이은 패전으로 왕권의 위엄은 땅에 떨어지고 반역의 기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밖에서는 그리스 침략군이 속속 페르시아의 영토를 침공해 들어오는 와중에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적을 맞아 싸워도 모자랄 판국에 제국의 한 축을 이루는 민족을 진멸하려 하는 내전을 일으키려 했던 것이 하만의 행위였습니다.
정말 똑똑한 반역자는 처음부터 국왕을 노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만도 처음에는 크세르크세스 왕의 목을 다이렉트로 노렸다가 모르드개에 의해 실패한 후 작전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1편에 언급했듯 가톨릭 성경에서는 모르드개가 빅다나와 데레스의 역모를 적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그 둘이 처형된 것을 듣고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이를 간다는 언급으로 보아 분명 하만의 사주에 의해 왕을 모살하려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국왕의 첩보요원이자 친위대의 수문장인 모르드개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크세르크세스 왕을 제거하고 페르시아를 뒤엎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작전을 선회하여 국왕의 친위세력을 먼저 없애버리는 쪽으로 전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패전과 백성들로부터의 인기 하락으로 여러 모로 고독한 처지에 놓여 있던 크세르크세스 왕은 국면을 전환하고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요량으로 과거 고려의 공민왕이 신돈을 등용했듯이 마케도니아 출신 (실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인) 하만을 중용하여 왕권을 강화할 생각을 했으나 하만은 그런 국왕의 은공을 저버리고 ‘야수의 심장으로’ 역모를 꾸몄던 것입니다. 결국 하만은 불순한 세력들을 숙청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할 것인 양 크세르크세스 왕을 기만하여 유대인들을 멸절시키는 법령을 선포하도록 만들었고 만약 이것이 그대로 시행되었다면 크세르크세스 왕을 비롯하여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가는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크세르크세스 왕의 조서에서 보듯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있어 매우 모범적이고 충성스러운 신민이었고 그 출신인 에스더 왕비는 국왕의 충실한 반려였으며 왕비의 혈족인 모르드개는 국왕의 든든한 친위세력이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목숨까지 구해준 은인이자 공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들을 어떤 근거도 단서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모조리 죽이고 노략질을 한다면 그리스와의 전쟁 와중에 있던 페르시아로써는 어마어마한 인적, 물적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며 그 우매한 크세르크세스 왕에 대한 신뢰와 충성은 뿌리째 뽑혀나가게 될 것입니다. 충성해 봐야 돌아올 것은 숙청의 칼날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제국 내의 각 민족들과 지방 장관들과 무관들은 칼을 거꾸로 잡고 반기를 들 것이며 그렇게 왕권이 땅에 떨어지고 국왕의 친위 세력들이 소멸된 후 하만이 그 무리들을 이끌고 수사의 왕궁으로 진격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만이 수사의 왕궁에 입성하기 전에 이미 크세르크세스 왕의 목이 떨어져 갈대밭에 나뒹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수사의 왕궁 내에 하만의 일당이 500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시와 궁녀, 친위병들 중에서조차 국왕을 모살하려 하는 자들이 있고 하만에게 가담한 역적들이 있다는 것은 당시 크세르크세스 왕의 처지가 얼마나 벼랑 끝에 몰려 있었는지 실감나게 합니다. 역적들이 도사리고 있는 와중에 크세르크세스 왕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충신 모르드개의 필살적인 왕권 보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대의 페르시아인들은 관동 대지진 때의 일본인 자경단처럼 선동 한번에 눈이 뒤집혀 죽창과 일본도를 들고 이웃에 살던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그런 미치광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가 역관광 반격을 당해 몰살당하는 페르시아 전역의 7만 5천명, 수사의 왕궁 내에 500명, 수사 시내에 있는 300명은 과연 어떤 자들이겠습니까? 그들은 하만의 밀명을 받고 제국령 요소요소에 잠복하여 궐기의 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반란군들이 아니었을까요?
유대인들을 숙청하는 것은 반역의 시작에 불과할 뿐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약탈하여 노략한 재물로 군자금을 삼아 더더욱 세를 불려 페르시아 왕가를 뒤엎을 계획이었을 것이며 또한 크세르크세스 왕의 조서에서 보듯이 본토 페르시아 사람도 아닌 마케도니아 출신의 하만이 이런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데 그의 출신 국가인 마케도니아 및 페르시아 내에 혼란을 일으켜 전쟁 수행을 방해하려는 그리스의 사주와 막후 지원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하만의 행위는 국왕을 시해하고 국가를 뒤엎으려는 반역 행위이자 전시에 적국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였으며 삼족을 멸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악랄한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모를 진압한 빛나는 업적이 왜 페르시아 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에스더 또한 그 이름과 행적이 명시되어 있지 않고 크세르크세스 왕의 왕비는 페르시아 귀족이자 장군인 오타네스와 선왕 다리우스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스트리스라고 기록되어 있을까요?
더군다나 헤로도토스의 역사서를 보면 아메스트리스는 크세르크세스 왕의 새로 들인 첩을 질투하여 그녀의 어머니를 토막내어 죽이고 지하의 신께 바치는 제물이라는 명목으로 페르시아 귀족 14명을 생매장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측천무후에 비길 만한 악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체 이런 극과 극의 상황은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요?
이 엄청난 괴리에 대해 고민하던 중 저는 <이미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이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에 의해 완전히 왜곡되어 전혀 엉뚱하게 기록된> 사례에 대해 찾아냈습니다.
대제국 페르시아를 존재하게 한 명군 중의 명군인 키루스 2세. (고레스 왕) 이 인물은 이란 고원 한구석에 박혀 있던 페르시아를 부흥시켜 강대한 메디아 왕국을 집어삼킴으로써 제국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키루스 2세가 메디아 왕국을 침공하여 정복한 것인데….. 어떤 역사책에는 전혀 생뚱맞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키루스 2세가 메디아 왕국의 동맹으로서 외적을 격파하고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 내자 메디아 왕이자 키루스 2세의 숙부가 되는 시아자리스 왕이 자신의 외동딸 아마티아 공주를 키루스 2세에게 시집보내 메디아 왕위까지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페르시아와 메디아가 사이좋게(?) 합병하여 제국을 이루었다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심지어 베스트셀러인 <키루스 대제의 역전의 병법>이라는 유명한 책에 인용될 만큼 상당한 지지를 받는 설이며 헤로도토스와 쌍벽인 그리스 역사학자 크세노폰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디 사실이 그렇습니까? 진실은 역시나 페르시아 왕 키루스 2세가 메디아를 침공하여 집어삼킨 것이지요. 이 또한 에스더가 아메스트리스로 왜곡된 것만큼이나 엄청난 역사 날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이야기는 그렇게 난도질을 당하듯 왜곡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을까요?
저는 에스더의 남편인 크세르크세스 왕이 재위 12년째인 B.C. 474년에 하만의 역모를 진압하고 9년 후인 B.C. 465년에 또 다른 귀족들의 반란으로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뒤를 이은 국왕은 다행히도(?) 크세르크세스 왕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로 느헤미야를 도와 성전을 재건하도록 밀어주는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통상 선왕을 역모로 시해했다면 뒷감당이 두려워서라도 선왕의 아들을 옹립하지는 못할 텐데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한 것인가에 대해 저는 또다시 추리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상당히 어두운 결론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사람일진대 거대한 제국의 권력을 한손에 쥐고 죽이고 살리는 권세를 휘두르는 위치에 서게 되자 초심을 잃어버리고 전횡을 일삼았을 가능성입니다.
역사서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 왕은 말년에 정치에 관심을 잃고 하렘에 빠져 정사를 내팽개쳤다고 나와 있는데 아마도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국정 장악과 횡포에 질려 자포자기 해버린 상황이 아니었을까요? 어머니와 외조부가 부왕을 무시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에 아들인 아닥사스다조차 학을 떼어 버렸고 아닥사스다 왕이 귀족들에 의해 옹립된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귀족들을 규합하여 통치를 포기한 아버지 크세르크세스와 국정을 농단하는 어머니 에스더, 외조부 모르드개를 축출하고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닐까요?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합장된 묘소가 발굴되었다는 고고학 소식을 들은 바 있는데 왕비이면 최소한 국왕 크세르크세스의 능묘에 함께 묻혀 있어야 정상일진대 모르드개와 함께 묻혀 있었다는 것도 위와 같은 배경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어머니와 외조부에 대한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자 대대적인 역사 재구성에 착수하여 유대인 출신 에스더 왕비를 페르시아 귀족 장군 오타네스와 선대왕 다리우스의 여동생 사이에서 나온 아메스트리스 왕비로 바꿔치기 하고 행적 또한 완전히 새로운 내용들을 지어내어 원래 에스더의 행적을 덮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에스더 왕비와 모르드개의 일은 오로지 성경에만이 기록되어 전해지게 된 것이며 세상의 역사서에서는 지워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외조부로부터 다소의 신앙심만은 물려받았던 아닥사스다 왕은 그것을 잊지 않고 어머니와 외조부와 마찬가지로 신실한 유대인이던 느헤미야를 술 관원으로 등용하고 그를 유대 총독에까지 임명하며 페르시아 궁정의 막대한 내탕금을 밀어주어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해주기에 이릅니다. 그나마 조금은 밝은 결과라고 할까요?
에스더의 피를 물려받은 아닥사스다 왕을 끝으로 페르시아 역사에 더 이상 신실한 왕은 등장하지 않으며 에스더의 남편 크세르크세스 왕이 사망하고 135년, 성전을 재건해 준 아닥사스다 왕이 사망하고 95년 후인 B.C. 330년에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기록은 성령님의 감동이며 그 자체로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 모든 것, 일점 일획 하나도 진리 아닌 것이 없으며 진실 아닌 것이 없으며 사실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누가 입방아를 찧든 그것은 고색창연한 바위에 낀 이끼에 지나지 않으며 하만의 음모라는 무서운 시련을 부림절이라는 축제의 날로 변화시킨 놀라운 기적은 오늘날까지 한 민족 한 국가로서 굳건히 서 있는 이스라엘 그 자체가 바로 증거이고 우리 주 하나님께서 증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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