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owershipers

Worshipers following God's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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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크로수미아(μακροθυμία)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longsuffering)이라고 성경에 번역되는 헬라어 μακροθυμία(macrosumia)는 μακρός(= long)와 θυμός(= passion, anger)의 합성동사이다. 이 단어와 비슷한 뜻을 가진 헬라어는 ὑπομονή(후포모네, 인내, steadfast endurance, 눅 8:15, 21:19; 고후 12:12, 롬 5:3, 딤후 3:10, 벧후 1:6; 약 1:3; 계 3:10, 14:12)가 있다. 핍박과 환란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믿음의 인내라는 덕목으로, 이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비슷한 덕목처럼 보이지만, 딤후 3:10에서 바울은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과 인내(ὑπομονή)를 구별하여 디모데에게 이것들을 행하라고 권면한다. μακροθυμία는 단순히 어려움이나 핍박을 견디어내는 고통의 참음이나 끈질긴 물러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원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서 유래한 덕목이고, 신약성경에서는 형제나 혹은 이웃의 허물에 대한 용납과 기다려주는 참음의 덕목으로 확대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명사 μακροθυμία는 신약성경에서 14번 쓰였는데, 그 중에 10번은 바울서신에 나오고(롬 2:4; 9:22; 고후 6:6; 갈 5:22; 엡 4:2, 골 1;11, 딤전 1:16; 히 6:12; 약 5:10; 벧후 3:15 등), 동사 μακροθυμέω는 10번 쓰였는데, 바울서신에는 두 번 나온다(마 18:26, 29; 눅 18:7; 고전 13:4; 살전 5:14; 히 6:15; 벧후 3:9 등). 로마서 2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하나님의 진노와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잠시 미루는 것으로, 결코 하나님이 심판을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림을 뜻하거나 혹은 약해지신 하나님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μακροθυμία)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δικαιοκρισία)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ὀργή)를 네게 쌓는도다”(롬 2:4-5).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의로운 심판의 날에 임하게 될 것을 말하면서, 지금은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분노가 진노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미루어진 것을 “길이 참으심”(μακροθυμία)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18:21-35)에서 만 달란트를 주인에게 빚진 종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이니 주인에게 “내게 참으소서(μακροθυμέω), 다 갚으리이다” 라고 애원할 때, 주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빚을 탕감해 준다. 하지만 탕감 받은 종은 동료 종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갚으라고 말할 때, 그 동료가 “나를 참아주소서(μακροθυμέω), 갚으리이다” 라고 말하지만, 참지 않고 동료를 빚을 갚으라고 옥에 가둔다. 이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동료를 참아주지 않은 종에 분노하고(ὀργίζω). 그를 심판한다. 빚을 탕감해 주는 주인의 ‘오래 참음(μακροθυμία)’의 덕목이, 다른 형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오래 참음으로 실천되지 않을 때, 주인의 분노와 종말론적 심판이 이루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

μακροθυμία는 구약성경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연기하다”(delay the wrath)의 의미로 쓰였다. 금송아지 사건 후에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진노를 내리지 말라(출 32:12) 고 청원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을 선포한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אַפַּיִם אָרֵךְ),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분노하기를 더디한다‘는 본성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선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신앙인의 고백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신 14:18; 시 86:15, 103:8, 145:8; 사 48:9; 욜 2:13; 나훔 1:3; 욘 4:2). 헬라어 구약성경(LXX)은 “노하기를 더디하고”를 μακρόθυμος로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의 μακροθυμία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에 근거하는 분노와 심판의 일시적 연기이다. 하지만 분명히 진노(wrath)와 자비(mercy) 사이에 긴장이 계속되면서 진노와 심판이 그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구약의 신적인 μακροθυμία(=longsuffering)의 전통을 그대로 표현하면서, 이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는 것은 더 큰 진노를 쌓는 것이고, 미루어진 하나님의 진노가 결국 종말의 날에 있을 것을 선포한다(롬2:8). 우리를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우리도 형제에 대하여 오래 참는 용서와 관용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출처 : https://ibp.or.kr/wordspostachio/?q=YToyOntzOjQ6InBhZ2UiO2k6MjU7czoxMjoia2V5d29yZF90eXBlIjtzOjM6ImFsbCI7fQ%3D%3D&bmode=view&idx=2751176&t=board

하나님의 마크로수미아(μακροθυμί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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