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두 명을 고쳐 주시다
(막 10:46-52; 눅 18:35-43)
27⁕예수님이 ⁕거기로부터 나가서 지나가고 계실 때였다. 시각장애인 두 명이 ⁕예수님을 따라가며 소리쳤다.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다윗의 자손님!” 28⁕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시자 시각장애인 두 명이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그들이 대답한다. “그럼요, 주님!” 29그때에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어루만져 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대들의 믿음대로 그대들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30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주의하세요!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31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그 땅 전체에 ⁕예수님의 소문을 퍼뜨렸다.
1. 마태복음에서의 맹인 치유
- 마태복음 9:27-31 – 두 맹인의 치유
-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두 맹인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그들의 눈을 만져 주심으로 시력을 얻게 됩니다.
- 이들은 예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나가서 예수님의 소문을 퍼뜨립니다.
- 마태복음 12:22-23 –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자 치유
- 눈 멀고 말 못하게 된 이유가 ‘귀신 들림’으로 인한 경우였는데,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 사람이 보고 말하게 됩니다.
- 이때 주변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메시아적 칭호) 하며 놀라워합니다.
- 마태복음 20:29-34 – 여리고에서의 두 맹인 치유
- 예수님이 여리고를 떠나실 때 두 맹인이 길가에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눈을 만져 주시자, 곧 보게 되어 예수를 따릅니다.
- 이 사건은 복음서마다 ‘맹인’ 숫자나 이름 언급이 조금씩 다르며(마태는 ‘두 명’, 마가는 ‘바디매오’ 등), 동일 사건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 마가복음에서의 맹인 치유
- 마가복음 8:22-26 – 벳새다 맹인 치유
- 사람들이 맹인을 예수께 데려오자, 예수님께서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 맹인의 눈에 침을 바르시고 안수하신 뒤, “보이느냐?” 물으시자 처음에는 사람을 “나무 같은 것”으로 어렴풋이 본다고 대답합니다.
- 예수님이 다시 안수하시자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어 사물을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 이 치유는 “두 번에 걸쳐” 시력이 회복되는 독특한 과정을 보여 줍니다.
- 마가복음 10:46-52 – 여리고에서의 바디매오 치유
-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 사람들은 그를 꾸짖어도 바디매오는 더 크게 부르짖습니다.
- 예수님이 그를 부르시고,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실 때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합니다.
-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즉시 눈을 뜨게 하시며, 바디매오는 예수를 따라갑니다.
3. 누가복음에서의 맹인 치유
- 누가복음 7:21-22 – 많은 맹인을 고치심(요약 진술)
-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정말 오실 그 분(메시아)이 맞는가?”를 묻자, 예수님이 여러 사람을 고치시는 장면이 요약적으로 언급됩니다.
- “맹인이 보게 되고,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입고…” 등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요약됩니다.
- 구체적 한 사람의 치유 사례라기보다 예수님이 맹인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치유하신 사실이 강조됩니다.
- 누가복음 18:35-43 – 여리고 가까이에서 한 맹인 치유
- 여리고로 가까이 가실 때 어떤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외칩니다.
- 이를 제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더 간절히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 예수님이 불러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자,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답합니다.
- 즉시 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릅니다.
4. 요한복음에서의 맹인 치유
- 요한복음 9:1-41 –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 치유
-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께 치유받는 긴 내러티브로,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 그가 씻고 돌아와 보게 되자, 주변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고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문제 삼습니다.
- “누가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인지?”를 놓고 논쟁이 이어지나, 결국 맹인이었던 자는 예수님께 예배하게 됩니다.
- 예수님은 영적인 의미까지 더해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고, 보는 자들은 오히려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외 참고할 만한 부분
-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많은 병자와 맹인들을 고치셨다”는 식으로 요약 언급되는 구절들도 있습니다(예: 마태복음 15:30-31 등). 하지만 이 경우 특정 맹인 한 사람(혹은 여러 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치유받았는지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습니다.
- 마태·마가·누가(공관복음)에서 나오는 “여리고에서 맹인을 치유하는 사건”은 같은 사건으로 보지만, 복음서마다 맹인의 수나 이름이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예: 마태는 두 명, 마가는 바디매오 한 명을 집중 조명).
- 요한복음 9장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를 고치신 뒤, 바리새인들과의 논쟁과 영적 메시지가 특별히 강조된 긴 에피소드이므로 맹인 치유 사건 중에서도 가장 상세한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정리
- 마태복음:
- (9:27-31) 두 맹인 치유
- (12:22-23)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자 치유
- (20:29-34) 여리고의 두 맹인 치유
- 마가복음:
- (8:22-26) 벳새다 맹인 치유
- (10:46-52) 바디매오 치유
- 누가복음:
- (7:21-22) 여러 맹인 치유(요약)
- (18:35-43) 여리고 인근 맹인 치유
- 요한복음:
- (9:1-41) 날 때부터 맹인된 자 치유
위 본문들이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눈먼 자(맹인)를 낫게 하신 사건”을 가장 분명하게 기록하는 핵심 구절들입니다. 각 본문을 차례로 읽어보시면 예수님이 눈먼 자에게 베푸신 기적과, 그 기적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의 능력과 메시지를 더욱 깊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서 속 맹인들은 예수님의 치유가 있기 전까지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에서, 신앙적인 차원에서 예수를 모르는 현대인들과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보지 못한다는 ‘무지(無知)와 무력함’
복음서의 맹인들은 주변 상황을 볼 수 없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예수님의 도움 없이는 그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예수를 모르는 현대인들도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 머무를 때가 많습니다. 진리나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완전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측면이 맹인들이 처한 ‘무력함’과 유사합니다. - 예수를 만나야 ‘눈이 열린다’
복음서의 맹인들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시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만남’으로써 영적인 눈이 열린다는 점에서 맹인들의 이야기가 현대인들에게 적용됩니다. 눈을 뜨게 하는 치료가 ‘예수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영적으로도 참된 깨달음(시력)은 결국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간절함’과 ‘믿음’의 필요성
복음서에서 맹인들은 예수님의 지나가심을 듣자마자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은 것처럼,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도 영적 갈급함이나 인생의 고민 속에서 간절히 답을 구할 때, 예수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맹인들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 ‘주’ 등 메시아로 고백하며 믿음을 표현했던 것처럼, 현대인 역시 믿음의 자세로 예수를 받아들이고자 할 때 영적인 눈이 열리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 자신의 ‘맹인 상태’를 인정하는 용기
복음서에 나오는 맹인들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볼 수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스스로의 부족함과 한계를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 연약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순간, 맹인들이 예수님께 치유받았던 것처럼 현대인들도 진리를 보게 되는 기회가 열립니다.
결국 복음서의 ‘눈먼 자들’과 ‘예수를 모르는 현대인들’은 모두 ‘어둠 속에 있는 상태’라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맹인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만 빛을 보게 되었듯이, 현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비로소 영적인 눈을 뜨고 참된 진리와 생명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공통된 신앙적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