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다른 장소, 한 분 성령님
본문
사도행전 10장 1~48절
핵심 말씀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 사도행전 10장 19~20절
교육 목표
사도행전 10장의 사건을 통해 다음 사실을 이해합니다.
- 성령님은 한 장소에만 머무시는 분이 아닙니다.
- 성령님은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을 동시에 준비하십니다.
-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상황을 연결하십니다.
- 우리는 성령님이 이미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상황 속에서 일하고 계실 수 있음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1. 도입: 화면을 둘로 나누어 봅시다
여러분,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화면이 두 장소를 번갈아 보여 줄 때가 있습니다.
한쪽 화면에서는 어떤 사람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화면에서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 사람이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아직 모릅니다.
“누가 나에게 전화를 하려는 걸까?”
두 번째 사람도 모릅니다.
“이 전화를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러나 영화를 보는 우리는 두 장면을 함께 보고 있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아, 이 두 사람이 곧 연결되겠구나.”
이처럼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 주는 방식을 ‘교차 편집’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0장도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두 장소를 번갈아 보여 줍니다.
화면 왼쪽에는 가이사랴라는 도시가 나옵니다.
그곳에는 고넬료라는 로마 군인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욥바라는 도시가 나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있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는 서로 알지 못합니다.
서로 만날 계획도 없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입니다.
2. 첫 번째 화면: 가이사랴의 고넬료
먼저 화면 왼쪽, 가이사랴를 보겠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세 시쯤,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고넬료야.”
고넬료는 두려워하며 대답했습니다.
“주님, 무슨 일입니까?”
천사는 고넬료에게 말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기억되었다. 이제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는 사람을 데려오너라.”
고넬료는 베드로가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해 줄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사람들을 욥바로 보냈습니다.
여기서 화면을 잠시 멈추어 보겠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가이사랴에서 욥바를 향해 걸어갑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을 만나러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화면을 오른쪽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3. 두 번째 화면: 욥바의 베드로
다음 날 낮 열두 시쯤입니다.
베드로는 욥바에 있는 한 집의 옥상으로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왔습니다.
그 안에는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여겼던 여러 동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베드로는 깜짝 놀라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부정한 것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다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
이 일이 세 번 반복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환상을 보여 주셨을까?”
베드로가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제 다시 화면을 왼쪽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출발한 고넬료의 사람들이 마침내 욥바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집의 문 앞에 섰습니다.
4. 교차 편집: 문 앞의 사람들과 옥상의 베드로
이 장면을 영화처럼 상상해 보겠습니다.
화면 왼쪽입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문 앞에서 묻습니다.
“베드로라는 분이 이 집에 계십니까?”
화면 오른쪽입니다.
베드로는 아직 옥상에서 환상의 뜻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려 하시는 것일까?”
화면 왼쪽에서는 사람들이 문을 두드립니다.
“똑똑똑.”
화면 오른쪽에서는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사람들이 너를 찾고 있다. 일어나 내려가라.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다.”
이 말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보내었다.”
고넬료에게 사람을 보내라고 말씀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에게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신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고넬료가 어디에 있는지 아셨습니다.
베드로가 어디에 있는지도 아셨습니다.
사람들이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는지도 아셨습니다.
그들이 언제 베드로의 집에 도착할지도 아셨습니다.
성령님은 고넬료의 집에서 일하시다가 그 일을 마치고 급하게 욥바로 달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한 장소에 계시면 다른 장소에는 계실 수 없는 우리와 다르십니다.
성령님은 가이사랴에서도 일하셨고, 욥바에서도 일하셨으며, 두 장소 사이를 걷고 있던 사람들의 발걸음까지 인도하셨습니다.
5. 두 장면이 하나가 되다
베드로는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향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자, 고넬료는 가족과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두 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화면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가이사랴의 고넬료와 욥바의 베드로가 한자리에 만났습니다.
고넬료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모셔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령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비로소 환상의 뜻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구나. 어느 민족이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아 주시는구나.”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는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유대인에게 임하셨던 바로 그 성령님께서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의 가족에게도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복음을 유대인 안에만 가두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베드로가 넘지 못하고 있던 민족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복음이 전해지게 하셨습니다.
6.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도행전 10장의 이야기는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 줍니다.
첫째, 성령님은 한 장소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한 장소에 있으면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둘째, 성령님은 여러 사람의 마음과 상황 속에서 함께 일하십니다.
고넬료에게는 베드로를 초청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이방인을 거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만 준비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초청하는 사람도 준비시키시고, 초청받는 사람도 준비시키셨습니다.
셋째, 성령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먼저 일하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기 전까지 고넬료의 기도도, 환상도, 순종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에도 성령님은 이미 고넬료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편재하심은 단지 “성령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라는 지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성령님께서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준비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성령님께서 이미 다른 사람과 상황을 준비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7. 적용: 나는 전체 화면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화 속 한 장면만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의 장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의 장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전체 화면을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왜 내가 이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왜 지금 이곳으로 가야 하지?”
우리는 한쪽 화면만 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다른 화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상황을 미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사람들을 보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편견을 내려놓고 함께 갔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큰 역사는 작은 순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8. 마무리
사도행전 10장은 두 장소에서 시작합니다.
가이사랴에는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욥바에는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랐지만 성령님은 두 사람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으시며,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사람들을 준비하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장면만 보지만 성령님은 전체 이야기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순종하겠습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주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성령 하나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를 각각 준비시키시고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과 만남도 주님의 뜻 안에서 인도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가진 편견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거절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역사하시며
우리보다 앞서 길을 준비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교사용 해설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의 환상과 베드로의 환상이 정확히 같은 시각에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고넬료는 어느 날 오후 세 시경 환상을 보았고, 베드로는 그다음 날 낮 열두 시경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의 집에 도착하는 순간, 베드로는 옥상에서 환상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으며 성령님께서 그에게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확하게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사건은 성령님의 편재성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교리 본문이라기보다, 성령님께서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여러 사람과 상황을 주권적으로 연결하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기억할 한 문장
“우리는 한 장면만 보지만, 성령님은 모든 장면에서 일하고 계십니다.”